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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과 송촌동에 남아 있는 역사적인 흔적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0. 1.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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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 중리동에 살면서 법동은 정말 많이 가보았습니다. 법동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모두 들어서서 빈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 왔을때 조성되기 시작한 법동은 중리동과 함께 계획적인 주거단지로 만들어진 곳으로 단독주택의 주거지로 많이 주목을 받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고 석장승도 보기 힘들었죠. 이곳에는 석장승이 있었다가 추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법동의 아파트단지로 들어가는 도로의 양쪽에 석장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돌장승은 원래 나무 장승이었는데, 약 300여 년 전에 돌장승으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형태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두지 않았다면 장승인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장승제를 지내는 이유 는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지역 경계를 알리고 있으며 금줄로 마을 입구에 해놓는 것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장승제를 지내는 제관은 생기복덕을 보아 엄격하게 선정하였다고 하는데 제의 준비가 이루어지면 제관과 축관, 구청장, 시의원, 마을 주민 100 여명이 제장에 임하는데 법동 분들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동에 신주거단지로 택지가 조성되었을 때 대덕구청으로 옮겨졌다가 법동 입구 도로 양쪽으로 모셔진 이 장승은 현재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1989.03.18 지정)로 지정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장승제를 지낼 때는 이곳에서 금줄 등을 달아놓는다고 합니다. 금줄에 매다는 붉은색 고추는 남아 혹은 악귀를 쫓아내는 의미, 숯은 정화작용을 의미하며 솔가지는 생명의 상징, 박은 신성한 상질물들이 악귀를 막아준다고 하네요.  





암석에 눈·코·입 등을 다듬어 표현한 남·여 한 쌍의 돌장승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고 해두었다고 합니다. 

작은 입과 턱선을 둥글게 처리하여 순한 인상을 주는 여장승은 남장승과는 달리 귀를 만들어 사실적인 느낌을 받게 해주고 있습니다.  남장승과 여장승 옆에는 각각 선돌이 서 있는데 남장승 옆의 것은 길쭉하여 남성을 상징하는 듯하고, 여장승 옆의 것은 펑퍼짐하여 여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만들어 두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야 갈길을 가야 할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족산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대덕구를 휘어 감고 있는 느낌의 산입니다. 나들이 하듯이 올 수 있어서 저에게는 꼭 있어야할 산이가도 합니다.  송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이곳은 송촌동인데 송촌 일대에 지네가 많아서 지네와 천적인 닭을 빌어지네를 없애기 위해 계족산이라 불리기도 했던 산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동춘당 생애길로 그의 다양한 글을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송촌 하면 생각나는 사람 송준길은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 혼인과 관계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상도의 유학자 정명세가 충청도의 저명한 유학자인 김장생에게 찾아와 사윗감을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김장생은 서당에 가면 세 명의 젊은이가 글을 읽고 있을 테니 가서 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정경세는 서당에 가서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명은 휴식을 취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 명은 일어나서 손님을 맞이했고 한 명은 일어나 앉아서 목례를 하였으며 한 명은 엎드린 채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 명의 행동을 보고 김장생에게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물었다고 합니다. 일어나 인사를 한 청년은 이모이며, 엎드려 책을 읽고 있던 청년은 송 모이며 앉아서 정중하게 목례만 하고 책 읽기를 한 청년은 송준길이었다고 합니다. 정경세는 중도(中道)를 지키려 했던 송준길을 사위로 삼았다고 합니다. 


법동이 개발되기 전에 이 근처를 수없이 지나다니면서 계족산을 올라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조그마한 골짜기인 법천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한복판을 흐르는 냇가를 중심으로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장소의 이미지를 형성할 때 필요한 요소가 하나 있는데 어떤 지역을 갈 때 우리는 다양한 돌이나 형태를 찾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것을 차례로 기억하게 됩니다. 기억은 특정 장소를 이해할 때 직접적인 경험만큼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올해 경자년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 올라와보는 계족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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