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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죽하마을과 중종반정의 공신 요산군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11.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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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청소면에 가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령 청소면 죽하마을에 가면 보령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된 요산군 이기사당이 있어서 살펴보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요산군 이기는 수안이씨 요산군파를 만들어낸 사람으로 보령에서 태어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중종반정에 참여해서 정국공신 3등 공신으로 훈호인 요산군을 받게 된 사람입니다.  



진죽리에 자리한 죽하마을은 본래 보령군 장척면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상리, 송암리, 외상리, 진목정리, 마참리, 사동, 죽하리, 후동 일부와 청소면의 건정리일부를 병합하여 진죽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고고한 선비처럼 살고 싶은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서 권력과 돈을 쥐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걸 출세의 길이라고 합니다.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긴 하죠.  




요산군묘가 있는 죽하마을의 진죽리는 유적이 발굴된 곳이라고 합니다. 진죽리 유적은 학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지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충남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취락과 통일신라시대 토기가마 등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는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등에서 일어났던 반정은 중심 권력의 교체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혁명과 다른 점은  왕조의 정통성은 유지한 채 왕위만 교체하는 것이므로 혁명이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반정으로 인해 높은 벼슬과 재물까지 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명명된 반정 사건은  1506년 9월 연산군을 축출한 중종반정과 1623년 3월 광해군을 축출한 인조반정입니다. 반정으로 권력을 쥔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계속 확장할때 훈구세력이라고도 했죠. 


지금도 그 후손들은 이곳에서 향사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반'(反)은 돌이킨다는 뜻으로 정통으로 돌아가거나 어긋난 정도(正道)를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위를 거의 빼앗다 싶이 한 사람이 있는데요. 태종이나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반정일까요. 세조는 단종을 죽이긴 했지만 살아생전에 선양받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반정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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