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대전)

대청호변에 자리한 향토적인 이야기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8.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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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송씨하면 대전에 세거하던 대표성씨이면서 성리학의 대표학자인 송시열의 본이기도 합니다. 대청호가 있던 지역은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많은 향토적인 흔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국도변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청호를 많이 돌아다녀보았지만 이런 석장승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보네요. 장승이 있는 지역에서 장승제를 지내는 이유 중 두 가지는 첫 번째 지역 경계를 알리고 있으며 금줄로 마을 입구에 해놓는 것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덩치가 남달라 보이는 석장승인데 이 석장승 역시 마을을 지켜주는 주신이겠죠. 


마을 장승제는 신성 구역을 선포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을을 지켜주며 두려워하며 우리 민족 문화의 신앙처럼 석장승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신전 정화, 마을 경계로 쓰이며 몽골에서는 지역 경계 표시를 할 때 금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장승은 비룡동(줄골) 장승으로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의 석장승 2기가 마주 서 잇는데 남장승은 북쪽을 향해 서 있고 여장승은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두 장승은 2.5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었는데 대전과 추동을 연결하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여장승을 뒤로 물려 지금은 10미터의 간격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남 장승의 외형은 전형적인 문관석 형으로 높이가 2미터 정도이고 여장승은 1.7미터 정도에 사람이 얼굴을 새기었다고 합니다. 거리제를 지내고 난 후 짚으로 만든 주머니에 떡과 과일 등을 넣어 장승의 목에 걸어두기도 한다고 합니다. 


장승의 옆으로는 은진송씨 상계당공재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옛 지명들이 보입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 이름으로 부르며 살았겠죠. 


은진송씨의 재실로 들어가는 공간에도 장승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은진 송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79명, 상신 2명, 대제학 1명을 배출하였던 성씨입니다, 특히 목사공파(牧使公派)와 정랑공파(正郞公派)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송춘당공원의 송준길은 영의정이 추증되고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송시열은 좌의정을 지내고 문묘와 종묘에 종사되었습니다. 




은진(恩津)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대의 지명입니다. 백제의 가지내현(加知柰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시진(市津)으로 고치고 덕근군(德近郡)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공주(公州)의 임내(任內)가 된 곳입니다. 그러고보니 대청호라는 지역의 광할함을 다시금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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