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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을 지켰던 장군의 흔적을 찾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8. 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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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시대를 열고 무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의자왕은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신라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고구려는 물론이고 당나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등 유능한 통치력을 발휘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백제군사박물관이 자리하기도 한 이곳은 좌측에 잠들어 있을 계백장군은 백제의 마지막 혼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황산벌 전투를 이끌었던 백제의 장군으로는 잘 알려졌지만 계백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황산벌 전투로 나가기 전의 직위가 달솔이었습니다. 달솔의 직을 가진 사람은 은꽃을 꽂은 관(冠)을 쓰고 자주색 관복을 입었으며, 도성의 5부(部)와 지방의 5방(方)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의 역할을 했던 직책입니다. 


백제군사박물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당시 어떤 생활을 했는지 군사와 관련된 장비같은 것도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특정인물을 상징하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겠지만 마치 계백장군을 연상케하는 것은 저만인가요.  나당 연합군이 이미 탄현과 백강으로 진입했다는 급보가 전해졌을 때, 의자왕은 급히 달솔 계백에게 5천 명의 군사를 내주게 됩니다. 달솔이 낮은 계급은 아니지만 마지막 전투라고 생각했을 때 보냈을 정도의 직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의 백제의 갑옷은 상당히 치밀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특히 장군의 군복은 왠만한 화살이나 검등을 막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매년 봄에서는 백제장군 계백을 모시는 제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봄에 그 제사를 보려고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황산벌, 달솔이라는 직위, 처자식을 죽이고 나아갔다는 사실과 4번의 전투 외에 계백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5,000 결사대를 이끌고 나아갔을 때 논산지역의 분위기는 상당히 비장햇을 겁니다. 


위쪽으로 올라오니 계백장군의 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황산이 있는 벌에서 전투를 이끌었던 계백장군은 장렬히 전사하게 됩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군은 거칠 것 없이 사비성으로 진격했습니다. 이어서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 연합군이 합세하게 됩니다.  저기가 계백장군의 묘라고 합니다. 왕릉 같아 보이는 규모다. 차라리 계백장군처럼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기에 자신의 이름이라고 붙은 묘가 남아 있었다. 백제시대의 릉으로 무녕왕릉을 제외하고 송산리 고분 5호, 6호나 왕들의 무덤이라는 능산리 고분군이나 귀족들의 무덤이라는 능안골 고분군 모두 누가 주인인지 모른다. 


백제의 마지막을 지켰을 계백장군의 묘를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700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 온 백제라는 나라는 그렇게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이후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의자왕은 그곳에서 죽었고, 백제의 유민들이 결성한 부흥군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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