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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초입에서 만나는 선사시대의 흔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6.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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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을 수없이 오고갔지만 국도에서 나오면서 화산고인돌은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고인돌이 있어서 고인돌 삼거리라고 명명되어 있는 이곳은 화산고인돌이 나온 곳이라고 합니다. 


선사시대의 흔적을 발견하는데 나름 일가견이 있는데요. 왜 그동안 이 고인돌을 본 적이 없을까요. 화산고인돌이 자리한 곳은 한양조씨 집성촌이기도 합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꽃고개라고 예전부터 불려왔던 곳으로 화현이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화산1동에 속하는 곳입니다. 




한양조씨의 시조는 고려 때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라고 합니다. 한양조씨 가문에서는 조선 개국공신이 2명이 배출되었는데, 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趙仁沃)과 태종 때 찬성사를 지낸 조온(趙溫)입니다. 한양조씨 가운데서 가장 번창하였던 가문은 판도판서 조인벽(趙仁璧)의 아들 4형제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고인돌의 종류는 탁자식과 바둑판식으로 구분이 됩니다. 땅 위에 기둥 역할을 하는 고인돌을 세운 후 커다란 돌을 올려놓은 것이 탁자식이고 땅 속에 사각형으로 돌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잡석 등을 깔고 커다란 돌을 올려놓은 것이 바둑판식이라고 합니다.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규모가 있는 부족이 살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유력 부족장의 무덤을 만들 때 고인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에 부족의 규모가 작으면 힘듭니다. 고인돌 아래에는 부족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검이나 거울, 방울 등의 청동기들을 넣게 됩니다.  


한국에는 전 세계 고인돌의 50~50%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자리한 3기의 고인돌은 앞 도로의 중앙부 근처에 있던 것을 1997년 국도 36호의 우회도로 공사 때 발굴조사를 거쳐 이곳으로 이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인돌과 한양조씨 집성촌과 관련된 비를 보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봅니다. 지역마다 고인돌의 형태는 조금씩 다른데요. 전라남도 지방의 고인돌군은 외형상 두드러진 상석이 한쪽에 치우쳐서 분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고인돌 상석의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석곽의 장축은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또는 북동-남서) 방향이라고 합니다. 


집성촌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보이는 사당도 안쪽에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봉분의 크기가 예사롭지가 않은데요. 보통 봉분을 저정도로 크게 만들어 놓지는 않은데요.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보령에는 고인돌이 많지는 않은데요. 화산고인돌은 보령에 자리한 대표적인 선사시대의 흔적입니다. 


화산고인돌 : 충남 보령시 대청로 3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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