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전 대전은 동쪽으로는 회덕현이 있고 서쪽으로는 진잠현, 그리고 공주의 공주목이 자리했던 대전은 철도부설과 함께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도시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에서도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나왔는데요. 1895년 무관이었던 문석병이 지금의 유성에서 거병하여 최초의 을미의병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3월 1일 대전 으능정이 거리에 있는 스카이로드에서는 삼일절을 맞아 5시에서 6시까지 다양한 행사와 플래시 몹이 펼쳐졌습니다.
유관순으로 상징되는 3.1 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하게, 즉흥적으로 터져 나온 역사의 산물이 아닙니다. 안으로는 의병 투쟁, 동학농민전쟁, 의열 투쟁 등 밑으로부터 전개되어 온 민중운동과 독립협회 같은 단체들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나누어준 태극기를 머리높이 들고 있었습니다. 태극문양의 의미는 우리에게 큽니다.
삼일운동이 열릴때는 고종 황제의 국장을 2~3일 앞두고 각 지방에서 다수의 인사가 서울에 모일 뿐 아니라 예로부터 천시지리인화는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3대 조건이라고 하는 말도 있었던 시기였으며 3 교단이 일체가 되어 일으킨 의미와 삼일은 삼위일체의 철학적 요건이 들어가 있으며 영토와 인민, 주권의 3 요건으로 일국가가 성립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곳에 적고 있었습니다.
삼일운동은 점화를 했을 뿐 그 불은 감옥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으로 이날의 의미를 기려봅니다.
당시 민족대표들이 모여서 자주독립을 선언하던 인사동의 태화관은 한때 이완용이 살았던 집을 수리하여 음식점으로 바꾸어 사용하던 곳으로 이완용이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늑약을 밀의하던 장소이며 매국노들이 병탄 조약을 준비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태극기를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날이 365일중 얼마나 될까요.
이날만큼은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소리가 들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 - 제3조가 임시헌장에 있듯이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천년에나 한 번씩 나타나는 크고 빛난 별이 바로 이곳에 내려와 일천구백이 년 양력 십이월 십육일에 유관순으로 태어났다. 유관순은 별처럼 밝고 총명하고 씩씩한 처녀로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교훈 아래 어려서부터 효성과 신념이 강하였다. "
이날은 전국적으로 많은 행사와 많은 사람들의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강제병합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지만 사실 내부에서 무너진 것도 사실인데요. 나라를 팔았다는 매국을 한 사람들은 한국인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 하루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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