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효를 다하며 공정하게 살았던 김집선생사당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3. 26. 06:30
728x90
반응형

연산천이 흐르는 천변에 오래된 고택과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김집선생을 모시는 사당으로 그곳에는 선비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김장생의 아들이기도 한 김집의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사강이며 율곡 이이의 서녀사위였습니다. 





논산은 무언가 기차의 도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것은 아마 입영열차때문이 아닐까요. 연산천 옆으로는 철길이 지나고 있습니다. 



김집의 사후에는 왕명으로 예장하여 연산 동쪽 천호산 고운승사(孤雲僧舍) 북쪽 손향원(巽向原)에 안장되었는데 이때 모인 사람이 거의 천 여명이었는데 이들은 “조정에서는 의심을 풀 방법이 없어졌고, 학자는 종사(宗師)가 없어졌고, 군자는 믿을 곳이 없어졌고, 소인(小人)은 무서워 할 곳이 없어졌다.” 고 할 정도였습니다. 


김집선생의 사당은 임1길 109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산김씨 문경공파 중종은 'ㄱ'자 형태의 기와집으로 일본식 가옥이 살짝 가미된 현대 한옥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집을 비롯하여 사계 김장생의 후손은 대제학을 7명이나 배출하였으며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도 그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집선생의 사당답게 이곳을 들어가는 입구는 홍살문으로 되어 있는데 궁전, 관아, 향교, 정려등의 신성한 장소에 설치하여 악귀를 쫓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모든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김집은 조정에 참봉과 대사헌 판중추부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유학자로서 신념을 위해 낙향을 하여 살았다고 합니다.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문중)으로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조선시대에만 총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저곳이 김집 선생 사당으로 정문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4호(1987년)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5월 12일 김집 선생을 기리며 제향한다고 합니다.







김집은 효를 다하여 부모를 모시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9살 때 할아버지으 상을 맞아 김장생이 시묘살이를 하자 김집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좌우로 받들며 예를 다했습니다. 13살때는 어머니의 상을 치루었고 집상하던 중 신병을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김장생이 세상을 떠난 후 김집은 아버지의 규범을 준수하여 날마다 관대를 정결하게 챙겨 입고 새벽에 가묘를 뵈온 다음에 서실에 나가 책상을 대하여 글을 보며 사람 상대하기를 엄숙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김집선생사당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26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