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청양에 있는 안병찬 유적지를 찾아서 가는길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2. 27. 06:30
728x90
반응형

청양의 국도변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의 흔적이 있는데요.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 법부(法部) 주사로 을사오적을 죽일 것과 나라를 바로잡을 것을 국왕에게 상소했으나 오히려 경찰에 구속된 안병찬의 유적지입니다. 




안창식선생은 두 아들 병찬, 병림과 함께 1895년 을미의병에 투신했습니다. 부자가 나라의 넘어가는 것을 분개하며 일어난 것입니다. 1895년 12월 1일 홍주성에 입성할 계획을 세우고 민병등을 모아 홍주의병을 거의하도록 도왔습니다. 



안병찬 선생은 1895년 을미의병을 주도한 여파로 3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고종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1906년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의 참모로 활약하여 옥고를 치룬 후 1919년 파리만국강화회의에 장서서명사건으로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루기도 합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의거가 있자 변호사 자격으로 변호를 담당하기 위해 여순(旅順) 법정으로 가기도했는데요. 그러나 일제는 관선변호인만 인정하고 안병찬의 변호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적지로 가는길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창식 선생의 아들이었던 안병림 선생은 민종식의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사 및 돌격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안항식 선생은 1906년 4월 25일 병오홍주의병 당시 참모로 활약하여 일제에게 체포된 후 대마도로 후송 감금되었다가 4년만에 귀국하였습니다. 


1915년 10월부터는 평안북도신의주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습니다. 




이르쿠츠크파를 위해 활동하다가 같은 해 모스크바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반대파인 상해파에게 암살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마적에 의해 암살되었다고도 전하는데요. 안병찬은 1963년 독립장에 추서됩니다. 


안병찬 유적지 : 충남 청양군 화성면 청대골길 11-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