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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병사리와 교목세가였던 파평윤씨 재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3.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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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나라의 교목이라는 것은 대궐의 기둥과 추춧돌로 나라와 고락을 함께하는 것이 그 의미로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파평윤씨중 근대 인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독립운동가 윤봉길입니다. 논산에는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솔향마을이라는 병사리가 있습니다. 





세가란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파평윤씨를 말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인물은 논산의 윤증고택의 주인공인 윤증이고 조선시대 문정왕후입니다. 




파평윤문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시대에 부응하여 조선왕조의 개창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파평윤씨 재실은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지은 수화사와 덕포공의 재실을 포함하여 한말에 세운 영사당, 성경재, 관리사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평윤씨의 중시조인 윤관은 여진족을 정벌하고 고려의 재상인 문하시중으로 오르며 숙종대 후반에서 예종대 초반에 걸쳐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개척한 사람으로 역사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려말 조선초에 시대가 변화하고 있을 때 파평윤문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동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여말 판도판서 윤승례는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고 하여 파주에 은거하고 이성계를 제거하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파평윤씨는 외척 가문으로 조선왕조와 상당히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나는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서 하나이다."  -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이런 말을 남긴 윤봉길도 파평윤씨입니다. 


전주이씨, 안동권씨의 뒤를 이어 파평윤씨는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문과 배출자를 내었던 가문입니다. 파평윤씨는 특히 여성들이 강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정왕후를 비롯하여 세조의 계유정난을 뒤에서 지원한 정희왕후도 파평윤씨 가문입니다. 






파평윤씨의 가문의 내부의 비극은 바로 문정왕후대에서 일어났습니다. 드라마에서도 그려진 대윤과 소윤은 당시 조선의 가문을 좌지우지하며 친족 간의 골육상쟁을 벌이게 됩니다. 




파평윤씨의 윤창세의 다섯 아들은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윤황의 아들들은 김장생을 사사하였다고 합니다. 윤선거, 윤증 부자로 이어지지만 은진송씨의 송시열과 반목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조선시대의 학문과 사상을 한층 심화시키고 구한말의 동도서기론과 위정척사론 등을 이끌어내면서 윤봉길 의사에게로 정신이 이어지게 됩니다. 







병사리에 는 걸어볼만한 저수지의 둘레길도 있고 윤창세선생 묘소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문과 무를 함께 겸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요. 내면과 외면을 모두 같이 닦는 것이며 지식과 지혜가 담기는 몸을 같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논산의 윤창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50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ㅏㄷ. 묘역 입구의 저수지변에는 윤창세의 신도비가 있고 묘역하단에 윤전, 윤순거, 윤진의 신도비가 위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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