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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리 고잠마을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류준근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6. 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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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김좌진 장군이 있는데요. 김좌진 장군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이 보령에 있었다고 합니다. 류준근 열사도 그중에 한 사람인데요. 김좌진 장군의 묘로 가는길의 우측으로 빠지면 류준근 열사의 묘로 가는길이 있습니다. 



류준근 열사의 묘역으로 가는길은 홍성에서 보령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열사 묘역으로 가는길은 이정표가 잘되어 있는편입니다. 찾아가기까지는 어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보령의 하늘과 서해의 바닷바람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제가 여행을 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네요. 


보령 출신 독립운동가 류준근 열사는 1905년에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나서 국권을 잃어버리는 과정에서 그 억울함을 풀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당시 류준근 열사는 납세를 거부하고 일본의 침략행위에 항거하여 투옥되기도 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류준근 열사는 을사조약이 체결되고난 이듬해에 전 참판이었던 민종식이 홍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휘하로 들어가 홍주성을 함락한 후에 참모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파리강화회의에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인 중 한 명이었던 류준근 열사는 1919년 삼일운동에도 참가한 후 이듬해 보령으로 내려와 사망했다고 합니다.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관리들에게 "전곡갑병(錢 甲兵)이 모두 저 오랑캐의 것이 되었는데 너희들은 세금을 누구에게 바치려는 것이냐" 했던 사람이 류준근 열사였다고 하는데요. 류준근열사는 1960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습니다. 


홍주의진의 활약상과 대마도 유배지에서의 생활 그리고 면암 최익현의 최후에 관하여 문집을 지었는데 그 제목은 「마도일기(馬島日記)」를 쓴 류준근의 흔적을 이곳에서 만나네요. 






무덤의 뒤쪽에 올라오니 이런 풍광이 펼쳐지네요. 일제강점기 초기에 류준근을 비롯하여 남규진(南奎振)·이식(李 )·신현두(申鉉斗)·이상구(李相龜)·문석환(文奭煥)·신보균(申輔均)·최상집(崔相集)·안항식(安恒植) 등 9명은 일본의 대마도(對馬島)로 압송되어 억류생활을 하기도 했었죠.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독립선언서에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 지도자들이 서명을 했지만 조선왕조 500년 동안 국교였던 유교의 지도자는 단 1명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개탄스럽게 생각했던 류준근 열사는 참여를 하게 됩니다. 



묘역이 너무 좋네요. 류준근이 참여한 파리 장서운동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유교 대표가 빠지고 유교가 비판·비난해 온 동학(천도교)과 기독교가 그 운동에 앞장선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 충격에 빠진 유림들이 당시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따로 유림 대표를 파견해 독립청원서를 전달하려 한 운동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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