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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에서 역사의 흔적 살펴보고 먹방하기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2.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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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대덕구에 산지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법동이나 송촌동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던 친구가 저와 함께 돌아다니며 소소한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더니 재미있어 하더군요.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르는 것이 역사의 발자취인 것 같습니다. 



오늘 갈 곳을 찾아보기 위해 법동 가로에 조성되어 있는 관련 장소를 찾아 보았습니다. 이곳에는 법동과 송촌동 부근에 있는 정려각이나 흔적들을 주소와 함께 상세한 설명까지 되어 있습니다. 



대덕구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궁금하신 분은 대덕구청 홈페이지나 대덕구 블로그에 올려 있으니 한 번 찾아 보세요. ^^ 



대한민국 로하스 인증도시 대덕구에는 200리에 걸쳐 로하스길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대청호를 중심으로 대덕구 전체구간에 걸쳐 걷고 자전거 타기 좋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법동에 있는 이 정려각은 우암송시열의 본인 은진송씨 여인의 정려각입니다. 송담 송남수의 딸로 시집간지 불과 몇 달이 안되어 남편이 죽은 후 친정 부모에게 의지하며 아들인 김경여를 훌륭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효성이 지긋한 것이 조정에 알려져 영조 때 정려가 되었다고 하네요. 




은진송씨 정려각은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대덕구에 이렇게 많은 역사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려각을 보기 위해 걸어 올라가 봅니다. 


정려각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지면 이 지역의 경사로 환호를 받는데요. 지방을 확실하게 통치하기 위해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 대해 정확한 실상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지방의 수령들에게 명했으며, 수령과 향교의 유학자들, 혹은 해당되는 집안에서 신청을 하면 예조에서 심사하여 왕에게 올리고, 최종적으로 왕이 정려를 명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정려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집안뿐만 아니라 그 고을의 경사였다고 합니다. 



늦은 시간에 만난터라 금방 어두워지네요. 이제 먹거리가 많은 송촌동으로 건너가봅니다. 


이번에도 정려각 탐방입니다. 이곳에 세워진 정려각은 고흥류씨 정려각과 비로 유씨 부인은 유준의 딸로서 진사 송극기에게 시집갔으나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네살난 아들과 함께 회덕의 시댁에 내려왔는데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잘 보살펴 훌륭히 키워 낸 부인은 조선 효종 4년(1653)에 열녀로서 정려각이 세워졌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열녀라는 것이 조금 의아할 수도 있는데요. 당시 시대에서는 통치 이념과 맞닿아 있던 우리네 고유 문화였다고 하네요. 



대덕구의 회덕지역은 과거 성리학자 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집성촌이기도 했죠. 은진송씨와 고흥류씨의 흔적을 만나봅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네요. 빨리 들어가서 식사라도 해야 겠습니다. 


송촌동 부근에는 맛집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입니다. 대덕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해물을 잘하는 곳을 들어가 봅니다. 통 우럭매운탕이 아주 실해 보입니다. 통우럭이 들어간 매운탕은 국물이 남다르죠. 



먹을 것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전복구이도 하나 주문합니다. 활전복을 먹기 좋게 굽고 살짝 버터를 바른 구이입니다. 대덕구에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저녁을 먹으니 무언가 제대로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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