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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의 제2차 야외사진전 '사진으로 보는 독립전쟁의 역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2.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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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발명되고 나서 수많은 기록들이 사진으로 남고 사진으로 기억되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는 제2차 야외사진전으로 사진으로 보는 독립전쟁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야외사진전을 통해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지속된 독립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기 위해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1년에 최소한 두 세번은 오는 곳이 바로 이곳 독립기념관으로 독립에 대한 기록뿐만이 아니라 독립을 함으로써 국민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독립기념관의 야외전시전에서는 청산리대첩 승전 기념사진등 총 48점이 전시가 되고 있다. 




독립기념탑 아래쪽에는 사람들이 통과해 갈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서 이곳을 지나가면 무언가 뿌듯함과 동시에 아련한 우리 민족의 슬픔이 느껴지는 곳이다. 



꽤나 넓은 부지에 조성되어 있는 천안 독립기념관은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기에도 좋은데 길마다 독립의 의미를 아로새길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이 조성되어 있어서 좋다. 





겨울철 한파로 인해 몸이 움추릴수도 있는데 이런 때 야외로 나와서 사진전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독립 전쟁(獨立戰爭)은 국가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에서 독립을 목적으로 일어나는 전쟁을 말한다. 독립 요구 운동이 무력 투쟁에서 전쟁으로 발전한 것이며, 그 점에서 기존의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쿠데타나, 동일한 주권 국가의 연속으로 정치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독립전쟁은 쿠데타 같은 것과 성격이 다르다.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력으로 일제와 맞서 싸운 것으로 이 무력항쟁은 의병으로부터 시작되어 독립군과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진다. 



평화를 지키고 이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땅을 지키기 위함인데 한인 청년들은 당시 조국 광복을 꿈꾸며 고돈 훈련을 이겨내고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등으로 망명하여 독립군기지와 사관학교를 통해 인재를 길러내기도 했다. 



일제에 병합되기 전에 이 땅에도 군대가 있었지만 힘을 없애기 위한 일제는 1907년에 대한제국의 군인들을 강제 해산시켰는데 이들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들과 함께 힘을 합쳤다고 한다. 그때 당시 원주진위대, 개성진위대, 청주진위대등이 대한제국의 군인으로서 의병전쟁을 이끈 대표적 의병장들이 나왔다고 한다. 




차례차례 대한제국의 힘을 없앤 사건은 1894년 경복궁침범사건,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1907년군대해산으로 때를 맞춰 일어선다. 


의견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기미 삼일운동으로 건립되었음을 명시한 제헌헌법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한 현행 헌법의 정신을 토대로 볼 때에도 2019년은 대한민국 탄생 100주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내년에는 더 큰 행사가 독립기념관에서 열릴 것으로 생각된다. 



오랜시간 독립을 기원하며 활동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나마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본다. 1차 세계대전 종전에 맞춰 러시아 지역에 있던 항일 독립운동지도자 39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을 발표하는데 이때가 1919년 2월 1일이다.






아래는 삼일절에 발표한 독립선언서 일부 내용이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제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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