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김제에는 벽골제 당진에는 합덕제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3.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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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보는 이면에는 반도체 기술이 있었다. 반도체 기술은 현대에 있어서 기술이 고도로 집약된 분야이다. 그리고 전기자동차 역시 그렇고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도 유망한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물을 관리하는 것을 최고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까지만 올라가도 물을 관리하는 것은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렇다면 1,000년전은 어떨까. 그때는 지금의 반도체 기술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술이었다. 




지금이야 전국에 주요 지역마다 댐이 만들어져 있어서 물을 조절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고대시대에는 물을 다루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제만경평야의 너른 들을 적시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인 김제의 벽골제(碧骨堤)는 알아도 당진에 있는 합덕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처음 이곳을 와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부여의 궁남지를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연이 많아서 그래 보인다. 당진합덕제는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348-1에 있다.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농경사회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과거 수천년간 농경문화는 한국의 중심 문화중 하나였다. 


재는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으며, 저수를 위해 쓰여진 제방만 원형대로 길게 남아 있으며 제방이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 있는 합덕제는 합덕방죽(合德防—) 또는 합덕연지(合德蓮池)로도 불린다. 



저 멀리로 보이는 합덕제의 둑은 흙을 쌓아 만들었으나 후에 돌을 이용하여 보수한 부분도 보이고 개수할 때 그 기록을 적어둔 중수비가 5기가 남아 있으나 당초 축조된 정확한 연대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백제시대라는 말도 있고 견훤이 둔전을 개간하고 12,000명의 둔병과 말 6,000필을 주둔시켰는데, 이 병사들에 의하여 합덕제가 축조되었다는 말도 있다. 



아직 관광지로 개발이 덜 되어서 그런지 그냥 넓은 농경지와 저수지에 연이 많은 공간 같은 느낌이다. 평지로부터 높이 7.8m, 전체길이 1,771m에 이르는 큰 방죽으로, 저수 면적은 103ha, 그 외에 물을 이용하였던 면적은 726ha에 이른다고 하니 당진의 쌀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 하다. 



합덕제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농경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물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과제이자 당시대의 이슈였다. 



아이가 힘겹게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둑을 쌓는 방법은 누수로부터 제방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최하단에 식물부재를 까는 부엽공법은 오사카의 사야마이케의 제방 축조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 사용했던 농기구도 만져보고 농경문화가 어떠했는지 경험해보는 것은 바로 산경험이다. 산경험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기이기 때문에 오래간다. 



당진의 한 어린이집에서 온 아이들이 즐겁게 농경문화도 즐기고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이날만큼은 아이들도 농업을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날이다. 북과 장구를 쳐보는 것은 덤이다. 


이 아이는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모양이다. 5~6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이리 저리 리어카를 끌며 돌아다니고 있다. 




최근에 전북 김제의 벽골제 및 황해 연안의 남대지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저수지의 하나로 평가받는 충남 당진의 합덕제가 세계관개시설물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유산에 등재된 것을 계기로 문화재이자 농업유산, 연꽃이 피는 휴식공간으로 다시 거듭나는 날을 기다리며 이곳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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