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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서재가 서원으로 변신한 지천서원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3.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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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학에 밝아 왕에게 〈역학계몽 易學啓蒙〉·〈성리대전 性理大全〉 등을 강론하기도 했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던 중종대 인물이 있습니다. 김세필이라는 사람으로 사후에 충주 팔봉서원에 제향되었지만 그를 기리는 공간은 음성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벼를 수확한 곳이 많지만 가을 이맘때쯤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풍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지만 밭에 여러 작물을 키워본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느낌이 남다릅니다. 




누군가를 기린다는 것은 그 기림을 받는 대상으로 참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 호는 십청헌·지비옹. 아버지는 첨정 훈(薰)이며, 어머니는 여산송씨로 학의 딸이다. 18세에 성종이 직접 유생들을 시험할 때 장원에 뽑혀 왕의 총애를 받았던 김세필은 지방유림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향교나 서원을 가면 모두 대소인개하마라는 이 비석을 만나게 됩니다. 지위가 높던 낮던 간에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서 가야된다는 의미죠. 



서원으로 그 역할을 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毁撤)되었지만 1893년에 유림과 후손들이 협의하여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향사(享祀:제사)를 지내오다가 1906년에 복원하였으며, 김자수(金自粹)·김저(金䃴)·김억(金嶷)·김정현(金鼎鉉)·김홍욱(金弘郁)·김종현(金宗鉉)·박상(朴祥)을 추가 배향되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 경건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 봅니다. 


지형지세가 멋진 곳에 지어졌네요. 이곳에 보수하고 남은 견내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경모문(景慕門)과 양 옆의 협문(夾門)으로 된 삼문(三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된 재실(齋室), 고직사(庫直舍), 유허비(遺墟碑)등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곳을 관리하는 후손들이 사무나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초정(初丁:첫번째 丁日)과 9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제사 음식)은 7변(籩)7두(豆)입니다. 




지천서원이라는 공간보다 그를 추모하며 지었다는 것에 더 관심이 갑니다. 


김세필 선생이 거제 유배기간동안 쓴 시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당시 갑자사화에 연루돼 옛신현 일대에 유배 온 분들과 주고받은 시운이 첫째이고, 유배지에서 울적한 심정을 표현한 글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에는 김세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제도에 가서 그 흔적을 만나봐야 겠습니다.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 선생이 대나무 부채를 남겨두고 갔기에, 고현천변에 거주하던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 선생이 부채 위에 칠언절구 2수를 적어 두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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