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에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장터3길 108에 있는 보령 대천리 집성당입니다. 집성당은 보령 노천리 웅천초등학교에서 하천을 따라 500여미터 정도 내려가면 화락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고 지나갈 만할 정도의 건물입니다.
다른 설명이 없이 도로변에 집성당으로 가는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기리고 성인의 영정을 봉안하여 제례를 갖추기 위한 사당입니다.
조선 말기인 1897년에 건립된 이곳은 당시 남포 인근 지역의 유생이었던 윤석봉과 조진학, 신섭이 주축이 되어 모든 유생들에게 창건취지를 알리는 통문을 발송하면서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가뭄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나마 이곳은 물이 있네요.
이 부근에서 착공을 위해서 1898년 토신제를 지내고 동년에 윤석봉이 준공을 알리는 고유제에 이어 우암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는 봉안제를 올림으로 완공이 되었습니다.
전면에는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이 있는데요. 사우인 건물 주변으로 담장을 둘렀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보령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서 분향하여 제례를 올렸던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서 유생들이 모여서 항일 의지를 심화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매년 1회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집성당은 정면 2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정면의 각 칸에는 4분 합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한 건물입니다. 2단의 기단 위에 놓여져 있는 집성당은 원형초석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건물을 납도리식 건물이라고 합니다. 양 옆 박공 아래에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석재전시관에서는 지난 6월 15일까지 제2회 현대 서예의 멋전이라는 전시전을 열었습니다.
대전에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우암 송시열은 조선중기 주차학의 대가로 1674년 효종비인 인선왕후의 죽음으로 자의대비의 상복 문제가 논의되자 대공설(9개월)을 주장했다가 예를 그르쳤다는 죄목으로 덕원, 웅천, 거제, 청풍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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