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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강진 월남사지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7. 10.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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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1번지 답게 다른 지역에 비해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강진에는 전라병영성을 비롯하여 하멜기념관, 정약용의 발길이 닿았던 흔적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적지 않은 관광자원이 있어서 그런지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흔적들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전라남도 강진군의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영암군을 가기 바로 직전에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비롯하여 옛 사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월남사지가 있다. 강진다원에서 가까운 곳이며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강진달빛한옥마을 지근거리에 있는 월납사지에는 월남사지 석탑도 같은 공간에 있는데 백제계 양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월남사지는 지금도 정비복원을 하고 있는 상태로 정비복원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는 지난 2011년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이 강진군의 요청과 문화재청의 허가로 약 한달간에 걸쳐 월남사 3층 석탑 (보물 제 298호)주변에서 이루어진 적이 있다. 




월남사지를 가기전에 먼저 만나게 되는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는 전체 높이 3.58m, 직사각형 대석 높이 2.6m, 너비 2.3m의 크기로 세워졌으며 사찰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누구의 비석인지 몰라 월남사지비라고 부르다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후 1973년 비의 내용을 파악 한 뒤에 진각국사비라고 정정했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며 머릿돌은 없다. 거북은 긴 목을 빼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 비석의 글은 문장가인 이규모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각국사가  혜심(慧諶, 1178~1234)이 창건한 사찰 월남사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호남 5대 명산이라는 월출산의 정기를 받으며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월출산은 일출과 서해를 물들이는 일몰광경은 호남 제일의 경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월남사지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구림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은 백제문화의 전수를 통해 일본 사람의 문화를 깨우치게 한 백제의 왕인 박사가 출생한 곳으로 유명하다.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에서 조금더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월남사지가 나온다. 창건당시 상ㅇ당히 큰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발굴 당시 상태가 매우 양호한 청자유물이 출토되어 고려청자로 유명한 강진을 재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월남사지 종합 안내판에는 보물로 지정된 진각국사비와 삼층석탑뿐만 아니라 주변의 주요 문화재도 표기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의 특징을 보면 유독 고려시대의 청자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의례용으로 사용되던 도철문 사각향로와 팔각향로를 비롯하여 흔히 발견되지 않는 청자도판도 출토되었다.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발굴작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과거에는 월남사지 3측 석탑 주변의 군유지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전체적인 사역범위와 건물배치등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석탑등이 백제계의 양식을 따랐지만 창건된 것은 고려시대로 12세기에서 13세기 초반에 창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12년 발굴당시 다량의 백제 기와와 출토되어 전남지역 최초의 백제의 사찰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와 건립시기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월남사지에 창건되었던 월남사는 고려시대 무인정권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문장가인 이규보가 진각대사비가 비문을 지었는데 진각구사 제자 118명의 이름은 별도로 최자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음기에 따르면 진각대사비 비는 고종 37년(1250)에 최씨 무신정권의 제2대 집정인 최우(崔瑀, 崔怡와 같은 사람) 와 그의 아들 최항(崔伉)의 각별한 관심에 따라 이곳 월남사에 세워진 것이었다. 


진각국사가 세우고 무인정권의 각별한 관심속에 사세를 확장해나가던 월남사가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월남사지 중앙에 있었던 월남사지 3층 석탑만이 사찰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군유지를 제외하고 개인 사유지가 포함되어 있는 월남사지는 외곽 담장의 흔적의 일부가 걸쳐져 있기도 하고 주변 마을의 집의 초석이나 담장 돌에 옛 사찰의 기단석등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월남사를 창건하였던 진각국사 혜심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위어 조계산 수선사의 제2세 사주가 된 승려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뒷 배경으로 두고 가람이 배치가 되었는데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에 4개의 단을 만들고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남에서 규모가 상당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월남사지의 규모는 외곽 담장의 흔적으로 추정해볼때  동서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월남사지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

월남사지 삼층석탑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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