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건과 박세주라는 사람은 과거의 사람입니다.
박씨중에 밀양 박씨가 가장 많은데요. 본관은 밀양이며 호는 성은인 박승건은 광해군 1년에 출생하여 인조8년에 진사에 오르고 효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입니다. 보령의 밀양 박씨 집성촌을 만들게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박승건.박세주 정려각은 보령과 부여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근처에는 밀양 박씨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하더라구요.
조용하다 못해 정적만 흐릅니다. 정려각을 보려고 올라가니 개 짖는 소리만 들리네요. 가까이 가서 친한척 하고 싶었지만 개울 하나를 건너가야 되기 때문에 그냥 정려각쪽으로 걸어서 올라갑니다.
정언이 되었을 때에는 형조판서 허적을 탄핵하기도 했고 사헌부 시평 전라도정 제용감정 상주목사를 지내기도 했던 박승건은 우암 송시열과 도의지교를 맺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셔진 다른 한 사람인 박세주는 박승건의 아들로 13살때 부친이 병으로 고생하였을 때 겨울에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자 설중에 대밭으로 나가 천신께 빌어 죽순을 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보령을 여행 다니다가 보면 대부분의 비석의 질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만큼 보령이 돌의 주산지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포오석이라고 쓰는 용어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벼루명장의 말씀도 있지만, 이미 남포오석이란 말이 널리 퍼져 있어 쉽게 고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아래는 김진한 명장의 의견입니다.
"남포오석연은 실학자들이 까맣다고 쓴 용어인데 잘못된 용어다. 남포청석연이라고 해야한다. 청석은 뻘이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고, 오석은 모래가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남포오석은 비석등에 쓰여진 것이다." 이는 문화재청에 이야기해서 2017년 초에 책이 만들어졌는데 6만권이 전국에 배포되었다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려각하면 효자나 열녀를 많이 생각합니다.
정려각은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을 세워 기념하는 것입니다. 정절녀의 경우 열녀각이나 열녀문이 되고 효자의 경우 효자각이 되며 일반적으로 정려문이나 정려각으로 칭합니다. 이렇게 현판과 비석을 세우고 각을 건립하여 그 의미를 기립니다.
조선시대에 정려각을 세운다는 것은 마을의 경사를 의미합니다. 집안뿐만이 아니라 고을의 경사였던 정려각이 세워지면 다양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수령과 향교의 유학자들, 혹은 해당되는 집안에서 신청을 하면 예조에서 심사하여 왕에게 올리고, 최종적으로 왕이 정려를 명하면 세워지게 됩니다.
벼슬을 내리거나 세금과 균역을 면제하기도 했던 정려각은 마을의 큰 경사였으니 보령의 작은 마을에 세워진 이 정려각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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