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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여행길에 만난 김제의 옛 흔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12.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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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는 지역적으로 연결된 사람이 아니고는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김제역은 2015년을 기준으로 인구가 10만명이 안되는 소도시이지만 면적은 상당히 큰 곳으로 도시안에는 다양한 시설이나 가볼만한 숨겨진 관광지도 적지 않다. 


새만금방조제가 연결되고 나서 군산과 부안은 시작점과 끝점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김제는 중간에 있어서 구심점이 될 수도 있어 보이지만 새만금과 연계된 직접적인 관광상품 개발이 필요한 상태이다. 



필자는 어떤 곳을 여행하던지간에 가장 먼저 가보는 곳중에 하나가 기차역이다. 

기차역에 가면 그도시에서 먼저 알려주고 싶은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 도시를 처음 가보던가 잘 모른다면 역에서 소개하는 그 곳을 먼저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제역은 KTX가 정차하는 역으로 처음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시로이시 미치하루가 측량하여 완공한 곳으로 지금 이 형태를 이루게 된 것은 1985년이다. 



호남지방을 여행하면서 김제역에 정차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다. 전주와도 조금 떨어져 있고 군산과도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곳은 여객 수송보다 화물차량이 많이 정차한다. 


역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김제군에 자리했었던 관아가 나온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그냥 지나가면 한옥이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한 것처럼 보인다. 이 지역은 구시가지 지역으로 김제군 관아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동헌, 내아, 피금각, 관리사 건물 1채가 남아 있다. 



관아의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처마는 보다시피 겹쳐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아래의 주춧돌을 보면 자연석위에 살짝 둥근 돌을 대어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멋스러운 향나무이다. 동헌 바로 앞에 멋진 자태를 뽑내며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김제군의 읍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 잘 보존되고 있어서 의미가 있다. 


오래된 곳이니만큼 오래된 연령의 보호수도 있다. 


김제군 관아의 동헌과 내아는 지금까지 같이 있는 경우는 드문경우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럴 것이 업무를 보는 동헌과 살림을 하면서 거주하는 내아가 같이 있다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하루종일 업무를 보는 것인가라는 의구심도 살짝은 든다. 


뒤로 돌아오면 수령의 처소였던 김제 내아가 나오는데 이곳은 조선 현종 8년(1667년)에 세운 문화재로 2007년부터 올해까지 관아 건물지 발굴 및 복원, 건물보수가 추진이 되어 마무리 된다고 한다. 


동쪽이 트인 ㄷ자형 팔작지붕 기와집인 내아는 현재 ㄷ자형 안채만 남아 있는데 ㄷ자 중 북쪽에는 동편에 커다란 부엌이 있고, 그 왼편에 2칸짜리 방과 마루로 된 1칸짜리 골방이 있으며, 남쪽에는 가운데에 부엌 1칸이 남아 있다. 


예전에 연못이 있었던 자리가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연지 중앙으로 추정되는 지점에는 평면형태 원형의 인공섬(假山)이 조성 돼 있었던 그 공간이 언제 복원될지 궁금해진다. 


김제의 관아를 보고 위로 조금더 올라오면 다른 향교와 달리 위세가 당당한 김제향교가 나온다. 문화재청은 약 10년전 이곳 향교와 관아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조선시대 지방행정 및 교육기관의 입지조건과 건축적 양식이 담겨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냥 옛날 사람들의 교육기관이었던 향교가 다시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이다. 전국의 지자체에서는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을 하고 있는데 김제 역시 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인식변환을 가져올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김제시는 이번 문화재 활용 사업을 통해 침체돼 있던 김제 향교를 더욱더 활성화 시키고 새만금 관광의 한 축으로 잘 조성하여 연계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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