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의 벽골제(碧骨堤)는 김제만경평야의 너른 들을 적시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이다. 새만금 방조제를 마주보고 있는 군산, 김제, 부안중 김제시에 자리한 벽골제는 김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행지이면서 고대시대의 오래된 구조물의 흔적이기도 하다.
역사책에서만 만나보았더던 벽골제를 직접 보기 위해 김제로 발걸음을 했다.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농경사회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과거 수천년간 농경문화는 한국의 중심 문화중 하나였다.
김제 벽골제는 백제시대에 축조해, 태조 때 중수를 했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적지 않게 파괴된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김제평야를 기름지게 만들 수 있었던 1등 공신은 바로 이곳 벽골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과제이자 당시대의 이슈였다.
그곳이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벽골제는 두가지 의미를 같이 가지고 있는데 첨단의 토목기술과 역사성이다. 백제시대에 완공이 되었을 것이라고 유추되는 벽골제는 그 이전 세대인 마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지금은 새만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김제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김제 벽골제는 새만금 방조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둘다 토목 기술력을 필요로 했고 초기 농경문화에 큰 영향을 했다는 점도 동일하다.
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제방은 330년 처음 벽골제가 축조되었을 당시 규모가 1,800보라고 적고 있지만, 이후에 중수하는 과정에서 좀 더 확장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제방의 길이는 무려 3km이다. 이렇게 튼튼하게 지어진 벽골제에는 특별한 공법이 사용되었다. 누수로부터 제방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최하단에 식물부재를 까는 부엽공법은 오사카의 사야마이케의 제방 축조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 벽골제를 이용한 농업 생산력을 백제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바로 백제의 흔적들인데 이곳 벽골제도 조만간 그 이름을 올릴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한 국가나 한정된 지역의 문화유산을 뛰어넘어 세계의 온 인류가 공유해야 되는 매우 중요한 유산으로 잘 보존되어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좋은 유산이 벽골제이다.
1980년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진 벽골제의 수문 장생거를 비롯하여 오래된 과거의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만한 수준의 거대산업 구조물인 벽골제는 황금빛 들판을 만들고 가을냄새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어주었던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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