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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 조정래의 흔적 아리랑문학관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8. 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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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서 김제의 벽골제를 적어도 한 번은 읽어본 기억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이 있다면 잠깐 다시 정리하면 한국에서 남겨진 고대 저수지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저수지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수도있지만 고대시대에 대규모 저수지를 축조하는 기술은 오늘날의 댐을 건설하는 것과 비견될만 했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제는 새만금방조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대규모 저수지가 있었을만큼 이 근처에서는 대규모의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벽골제가 위치한 바로 앞에는 조정래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아리랑이라는 소설을 주제로한 아리랑 문학관이 있다. 

새만금 방조제와 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새만금 여행지의 영향권안에 들어가 있다.


아리랑문학관은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1길 24에 자리하고 있다. 



아리랑 문학관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2003년에 깁제시에 건립되었다.

조정래의 소설 아이랑의 원고와 시각자료가 전시된 문학 전시관으로 조정래의 근현대사 3부작 중 도입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아리랑문학관은 건물 면적 422.49㎡ 규모의 지상 2층 건물의 규모로 지정졌는데 이 안에 전시설은 3개의 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우선 1층의 제1전시실에 들어오면 주인공들의 대장정이 담긴 각 부의 줄거리가 담겨져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은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그들에게 맞서던 독립군은 살해당했다. 그리고 강제 이주등을 당하면서 암울한 세월을 보냈다. 



글좀 쓴다는 사람이나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 말하는 것이 있다. 동트기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 시기가 어두운 것이 그냥 암울한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40살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50살이 넘어 있었다고 한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씌기 위해 준비한 시간만 15년이 넘었다고 하니 제대로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먹고 자고 쓰고 하는 글감옥이 필요한 모양이다. 




위층에 2전시실로 오면 조정래 작가 연보와 적품 연보, 사진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 및 취재 수첩등이 전시되어 있다. 즉 조정래라는 사람의 일생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아리랑 문행을 따라가다보면 새만금 방조제 주변의 관광지를 함께 볼 수 있다. 새만금 감척지가 만들어진 곳부터 시작하에 김제평야, 부안지역등 수많은 문화유산도 감상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서재가 하나의 세계이며 공간이다. 자료수집이 끝나면 대부분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작품을 쓰는데 집중을 한다. 조정래 개인의 서재를 이곳에 꾸며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3전시실에는 가족사진 과 애장품, 집필 당시 사용했던 필기구 등 106종 370여가지 물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들이 선물한 것도 함께 볼 수 있다. 



작가가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정말 많은 경험도 해보아야 한다. 조정래가 쓴 아리랑에는 조선의 얼과 몸의 또 다른 이름이자 끝까지 민족독립을 위해 싸워나갔던 무수한 민초들의 삶을 아로새겨져 있다. 


아리랑 문학관 옆으로 오면 때마다 진행되는 창작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공간 창작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서는 천연염색, 도자기공예, 체험교실, 한국화, 다도실, 목공예, 서예등을 배워볼 수 있다. 




고대 저수지가 있었던 벽골제는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자국 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풍요로운 김제땅을 침탈하였고  수자원의 체계적인 관리·개간·간척 등을 다각적으로 진행하였다. 1925년 일제가 결성한 동진수리조합에 의해 김제 면적의 2/3 정도가 관개(灌漑)되어 관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새만금 지역을 여행하시는 분이라면 문학기행의 일정으로 아리랑문학관을 끼워넣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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