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김옥균이다. 김옥균의 유명세(?)에 가려 조금은 덜 알려진 인물중에 홍영식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묘가 여주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외교관이면서 시까지 썼던 홍영식은 구한말 개화파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여주에서 홍영식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정표가 있긴 했지만 자세히 안내가 되어 있지 않았고 지도에서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홍영식의 묘를 찾아가다보면 조그마한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부터는 홍영식의 묘를 찾는것이 조금더 어려웠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서 질척해진 땅을 밟고 돌아다녀야 했다.
어디가 홍영식의 묘인지 헤매고 다니다가 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홍영식의 묘를 찾을 수 없어서 다시 돌아서 내려갔다.
다행히 내려가는 길에서 홍영식선생의 묘라고 씌여진 안내판을발견할 수 있었다.
홍영식은 1872년 칠석제 과거에 합격하고 187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면서 조정에나아갔다. 여러 관직을 겸직하면서 조선의 중심에서 활동하던 그는 김옥균등과 정변을 모의해 갑신정변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처형되었다.
홍영식의 묘는 이곳에서도 200여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체력이 약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숨이 금새 턱까지 차올랐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10분정도를 올라오니 홍영식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크게 조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갑신정변의 주역정도의 묘로 볼때 괜찮은 편인것 같아 보였다.
한국땅에 최초로 농기계를 도입했던 홍영식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도 하였으며 우편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데. 특히 우편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홍영식은 우정국을 설치하는데 주력을 하기도 했다. 갑신정변을 통해 조선을 개혁하려고 했던 홍영식은 실패로 돌아가면서 청군에게 살해되었는데 홍영식의 흔적은 외국인 로웰에 의해 이어지기도 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는데, 서문에 홍영식에 대한 추모글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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