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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의 중시조 역승공 손석을 모신 수정제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5.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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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변동 250에 가면 문화재자료 제30호로 지정된 수정제라는 재실이 있다. 옛날 유지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재실을 지어넣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정제 역시 그런 재실의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다. 대전은 비교적 젊은 도시로 조선시대 이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배제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정제는 누군가 살고 있는 한옥처럼 보여서 그냥 지나가기 마련이다. 밀양 손씨의 중시조라는 역승공 손석을 모신 수정제는 1967년에 후손들이 이 자리에 다시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수정제는 대문으로 사용하는 솟을 삼문 양 옆에 2칸씩의 조그마한 방이 달려 있다. 수정제라는 이름은 이곳에 수정암이라고 불렀는데 그 때문에 수정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직접 가서 보니 향교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수정제는 중국과 고려와 조선시대의 유학자를 모신 대성전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유생들이 거주하던 동재, 서재가 있었듯이 후손들이 머물 수 있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수정제를 관람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진에 보이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된다. 

이곳은 문화재이고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정제는 후손들이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수정제에는 대전시내에서 보기 힘든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이런 소나무들은 샘머리근린공원이나 월평근린공원등에서 볼 수 있다. 



수정제는 정면5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가운에 3칸은 대청마루를두고 양 옆에는 각각 1칸의 온돌방이 들어서 있다. 수정제 뒤 야산에는 손석의 묘를 비롯한 그의 후손들의 묘가 있다. 



손석의 장인은 고려 말에 전서를 지냈다는 임건으로 임건의 큰사위인 박진와 인연이 된 기회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임건의 딸과 혼인한 손석으로 인해 대전에는 밀양손씨와 충주박씨가 대전의 중요 성씨를 이루었다.  재실의 넓은 마당은 제사, 향사 등에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수정제 앞에는 다양한 들꽃들이 화사하게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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