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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12.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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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는 원형 로터리가 두개가 있다. 부여군보건소에 있는 로터리와 부여군청에 있는 로터리가 서로를 이어주면서 부여군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그곳에는 부여로 도읍을 옮긴 백제 성왕의 동상이 자리하고있다. 부여하면 성왕이라고 할만큼 성왕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외지인들은 그냥 이곳을 지나가지만 이곳에는 백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는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1944년 경찰서 신축과정에서 천왕이라고 새겨진 수막새와 연화문 수막새편이 출토되어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조사를 1차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다. 천왕사터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1966년 상수도 송수관공사 때 인접도로변에서 동제귀형식판이 출토된바 있다. 




공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1992년 9월 18일 ~ 12월 6일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1,500여평 중에서 이곳 부근 700평만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부여왕도에서 이어진 추정수로시설과 2기의 우물이 발견된 것외에 더이상의 시설의 흔적은 없었지만 발견된 유물로는 수막새, 방추차, 등잔, 토기완, 소호등이 출토되었고 3.6m거리를 두고 만들어진 두 우물은 북편 우물과 남편 우물으로 지형을 이용하여 남편 우물은 정화된 물이 차도록 만들었다. 



백제 구아리 백제 유적에 대한 설명을 읽어볼 수 있다. 

이곳에 있었던 우물은 백제가 패망하면서 함께 폐쇄된 것으로 추정되며 물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백제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가 있다. 



유물외에 발견된 것이 많지 않아서 유적지라는 것만 알 수 있을정도다.

초기에 발견되었을때는 천왕사터로 추정도 하였지만 부여 남동편의 금성산 중턱에 자리한 건물지 조사에서도 천왕사명의 기와가 발견됨으로써 천왕사가 자리했던 위치문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의자왕 12년조에 동사찰 기사가 실렸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국가에서는 수로가 한계적으로 발전한것만큼 우물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곳이 백제인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지 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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