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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도전한 사람들의 발걸음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10.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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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 가는 사람들은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도박을 하다가 막다른 길에 이르면 가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러 여행을 가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다는 산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반하러 가는 사람이다. 


해발 8850m의 에베레스트를 정상을 올라가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정신과 체력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을 물론이고 금전적으로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  네팔인이 주로 하는 세르파의 도움을 받으면 베이스 캠프나 좀 무리하면 1,2 캠프까지 갈 수는 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평소에 체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에베레스트는 네팔과 티베트에 걸쳐 있다. 


지금은 상업적인 등반이 일반화되었지만 상업등반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6년은 극한 도전이 상업화되기 시작한 해다. 등반 가이드인 롭 홀과 스캇 피셔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기 위한 등반대를 모집하게 된다. 전 세계에서 인생에서 꼭 이루고자 하는 의미 있는 도전을 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산은 고통이다. 


동물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도전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환경에서 생존할 뿐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은 무모한 것인지 지능을 가져서인지 모르지만 한계를 넘어선 도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극한 한계에 도전한 사람들을 응원한다. 속으로는 도전하고 싶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싶기도 하고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산이 고통인 이유는 높이 있기 때문이다. 

 

 

해발 2,000미터 : 기온은 어는 점 아래로 떨어지고 바람이 세지며 동상을 걱정해야 한다.

해발 5,944미터 : 네팔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곳에서 거주하는 것이 고통이다. (제1캠프)

해발 6,492미터 : 역시 네팔인들을 제외하고 일반인이 오래 있으면 고산병에 걸린다. (제2캠프)

해발 7,315미터 : 헬기는 절대 올라가지 못하고 체내 산소량의 급저화와 뇌세포 파괴 시작 (제3캠프)

해발 7,925미터 : 미생물 등을 제외하고 동물은 생존할 수 없다. Dead Zone의 마지막 라인 (제4캠프)


이제 8850미터의 정상까지 가려면 계속 죽음과 직면해야 하는 1,000여 미터의 고도를 올라가야 한다. 우선 공기 중에 산소 함량이 너무 낮아 사람이 생존할 수 없고 이 지대에 이르면 정신착란, 어지럼증, 신체 능력 저하, 시력 손상, 메스꺼움을 모두 겪을 수 있는 곳이다. 혈중 산소 함유량은 곤두박이칠 친다. 정맥은 산소가 낮은 혈액을 폐로 가져와 산소를 다시 채워야 하는데 공기 중에 산소가 너무 적기 때문에 공기에서 산소를 가져오지 못하고 공기에 산소를 잃게 된다. 산소통 없이 이곳에서 6~7시간이면 죽음을 맞이한다 8시간이 넘으면 생존확률은 0.1% 정도 밖에 안된다. 

 

 

산과 함께 묻힌 남자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상당히 덤덤한 느낌이다. 과거 클리프 행어나 K2, 버티컬 리미트같이 극적인 순간은 드물다. 현실에서 그렇게 극적으로 살아남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문 산악인들은 언제든지 위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팀이 달라도 서로를 챙겨주는 경향이 있다. 언제든 죽음에 직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유대관계 같은 것이 있다. 에베레스트 산 같은 곳에서의 구조대는 평범한 산의 구조대와 다르다. 아무리 날씨가 좋다고 하더라도 죽을 수 있는 확률이 높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과학이 이렇게 발전되었어도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은 수 없이 많다. 여러 사람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반하였지만 또 다시 그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무사히 내려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연은 벼덕이 심하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수차례 올라가 본 롭 홀과 스캇 피셔는 등반대를 이끌고 올라간 에베레스트의 품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최근 사람이 왜 도전을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미지의 영역이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그런 곳에서 도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불안 불안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갈까. 애초에 위험도가 높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도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죽고 싶지 않은 사람들 삶은  한번뿐이기에 그 가치를 만들어보려는 존재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초등학생들에게 평범한 사람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가 세상을 떠난 더그를 기리며. 당신에게 도전은 다음입니까? 지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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