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치안이 좋지만 인구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힘이 못미치는 곳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그냥 지나가버리면 모를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국보 제7호이다. 지금은 사찰이 보이지 않지만 이곳은 고려 현종 12년 (1021년)에 사찰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종 17년 (1026년)에 세운 비다.
지금 천안의 위치가 그렇듯이 호남과 한양을 잇는 갈래길로 교통의 요지였으니 다양한 사람도 모여들었고 그중에 강도도 있었다. 강도들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현종이 불법을 펴고 길가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봉선홍경사라는 사찰과 광연통화원이라는 숙소를 세웠다고 한다.
사찰이름이 왜 봉선이었을까 생각하며 살펴보았더니 현종의 부왕인 안종의 뜻을 받들어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안 봉선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듯 하다. 봉선사라고 하면 남양주 봉선사와 광릉봉선사가 가장 잘 잘알려져 있다. 이곳에 왜 봉선사 갈기비가 자리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석탑의 기단과 일부만 남아 있는 저 흔적은 의미가 없는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고 보호되고 있지도 않다. 아담한 형태의 석탑으로 석탑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크지는 않을 듯 하다.
봉선사 갈기비는 보호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갈기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 시대에는 인적이 드물어서 강도나 상해사건이 발생하면 CCTV를 설치하던지 경찰인력을 보강하지만 이때는 치안병력을 이곳가지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듯 하다. 그래서 사람왕래가 있을 사찰을 하나 세우는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었을 것이다.
지도에서도 검색하면 잘 나오지 않는 곳이다.
정확한 위치는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319-8번지이다.
비는 거북모양의 받침인 귀부가 있는데
귀부는 지대석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어룡의 머리가 정면을 보지 않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대부분의 귀부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것과는 좀 다르다.
고려시대의 조각과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 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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