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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가 모두 현충원에 있는 이남규 가문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10.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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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 이남규선생이라고 하면 구한말 일제와 싸운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기록말고도 유일한 기록이 하나 더 있다. 구한말 일제와 맞서 싸운 1대 수당 이남규 선생과 2대 이충구 선생,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3대 이승복 선생, 6·25전쟁에 참전한 4대 이장원 해병 소위가 모두 국립서울 현충원에 안장이 되어 있다.

 

이남규 선생의 경우 고려 말 목은 이색, 선조때의 영조 이산해, 이광임등을 배출한 가문의 후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남규 선생은 면암 최익현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1893년 일본의 조선 내정간섭,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등의 사건에 반대하여 의병 활동을 후원했다가 잡혀 면악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순국한지 얼마안되어 맏아들 이충구와 같이 피살된다.

 

 

이곳을 둘러보며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면암 최익현과 동시대를 살았으면서 1905년에 을사늑약에 체결되자  비장한 ‘청군신상하배성일전소(請君臣上下背城一戰疏)’를 올린 뒤 깨끗이 처신할 것을 결심하고 두문불출했으면서 최익현 선생이 의병을 일으킬 것을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노선이 달랐던 모양이다. 이남규선생은 아직 조선이 건재하다는 판단하에 왕명이 없이 움직이면 반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최익현 선생의 경우는 이미 의명을 일으키는 방법을 아니고는 돌이킬수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남규 가문에서는 이후 독립운동을 위한 중추적인 활동도 했는데 평주(平洲) 이승복(李昇馥, 1895∼1978)은 1913∼1919년 러시아 연해주와 북만주에서 독립지사인 이동녕, 이회영, 이시영, 이상설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로 나뉘어 활동하 던것을 하나로 만들어 민족협동전선의 대표적 항일단체인 신간회 결성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수당고택 옆에 이 수당기념관에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士可殺 不可辱(선비는 죽일 수 있으되 욕보일 수는 없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남규 선생 고택을 들어가면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따로 떨어져 있어서 의도적으로 이런 구성을 염두에 둔것인지 굼긍하다. 사랑채가 우측의 안채보다 뒤쪽에 위치해 있는데 'ㅡ'자형 팔작 지붕 형태이다.

 

같이 가셨던 어머니가 보시더니 이집은 그래도 잘살았던 집안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외할머니집이 그나마 잘사셨는데 초가집 3칸과 다른 건물 2칸, 사랑채역할을 하는 건물정도가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정도면 잘살았는데 이정도면 양반 중류층의 삶은 되었을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남규 선생(1855∼1907)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1855년 서울 미동에서 태어나 1875년 향시와 사마시 양과에 급제했다. 1882년 정시 문과에서 병과2등으로 합격했으며 1899년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되었다. 이곳 별당이자 사랑채 역시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충남도 유형문화재 68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2월 25일 국가민속문화재 281호 승격되었다.

 

 

이곳은 예전에는 공부를 가르치던 서당으로 사용된 곳이다.

 

별당을 지나가면 생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이남규 선생이 태어나 자랐다. 이산해의 손자 며느리인 이구의 부인이 보령에 살다가 이곳 근처에 이 고택을 건립하였다가 1800년대 중반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전에 한번 들러서 안쪽을 본적이 있었는데 이날은 조금 시간이 늦은 탓인지 오픈되어 있지 않았다.

이남규 생가는 남향집으로 모두 5량의 굴도리집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안에 들어가서 보면 'ㄷ'자형 형태로 들어오는 사람을 감싸고 있는데 살짝 튼 느낌의 'ㅁ'자형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면서 생각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나 어린이들이 너무 어렵게 접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역사는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조금더 무게를 덜고 즐길 수 있는 역사 문화축제처럼 만든다면 한결 접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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