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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마지막 보루였던 최영장군의 사당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9.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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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홍북면 대인리 114-1에는 최영장군 사당이 있다.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중심 인물로 두명을 꼽을 수 있다. 정신적인 버팀대였던 정몽주와 무력으로 고려를 지켰던 최영장군이 바로 그 인물들이다.

 

이성계가 새로운 왕조를 개국하기 위해서는 군사실권을 쥐고 있었던 최영장군의 제거와 정몽주의 회유 및 제거에 달려 있었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했던 시기만 제외하고 한번도 그 땅을 편입시킨 적이 없다. 고려 말 최영장군이나 인조, 효종때 잠시 넘보기는 했지만 내부와 외부의 복잡한 상황때문에 실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최영장군은 홍성 홍북면 노은리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최영장군은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기록외에 많은 자료는 남아 있지는 않다. 최영장군의 사당이 이곳에 있다는 것도 이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다가 발견해서 알게 된 것이다. 승용차로 가기에는 경사가 너무 심해서 올라가지 못하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조금 걸어 올라가다보면 마치 성벽을 연상시키는 곳에 최영장군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영장군은 16세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면서 살아갔던 사람이다. 홍건적을 격파하였으며 시도때도 없이 넘어와 노략질을 하던 왜구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최영장군은 당시 우왕에게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겠다면서 아래와 같이 청한다.

 

"보잘것 없는 왜놈이 횡포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지금 제어하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다른 장수를 보내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으며 군사도 평소에 훈련하지 않았으니 또한 가히 쓰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비록 늙었으나 뜻은 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종사를 편히 하고 왕실을 방위하고자 함이오니 원컨대 빨리 부하를 거느리고 가서 치게 하여 주옵소서."

 

 

고려말에 원나라는 그 힘을 잃어갔고 새로운 세력인 명나라가 떠오르고 있었다. 고려 우왕은 무리한 조공을 요구하는 명나라를 정벌하고 싶어했고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최영장군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다.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반대했는데 많이 알려진 4가지 불가론을 내세운다. 건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세가 약한 명나라는 당시 주력군을 몽고 방면으로 출정보낸 상태였다. 무리한 공물요구와 함경도 이북에 철령위를 둔다는 명나라의 태도는 요동정벌로 방향을 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 그러나 이성계를 비롯한 수많은 장수들은 반대를 했었고 그런 장수를 우군도통사에 임명해 보낸 것은 우왕과 최영장군의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최영장군의 굳은 절개와 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사당의 기운이 느껴진다.

 

위화도까지 올라갔던 이성계는 계속 시간을 지연시키다가 자신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위화도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그곳에서도 오랜시간을 보내던 이성계와 그를 따르던 군사는 이성계의 회군명령이 떨어지자 단 9일만에 개경에 도착하여 당시 고려를 지탱하던 세력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최영장군의 무덤도 아닌 사당인데 풍수는 참 좋아보이는 느낌이다.

 

이미 썩어버린 고려왕조를 무너트리고 실권을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열었던 이성계는 모든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장군의 죽음뒤에는 고려의 왕씨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유배를 보내게 된다. 조선을 세운 후에 왕씨들은 대부분 수장이 되거나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성을 바꾼다.

 

 

최영장군 사당인 기봉사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적지 않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저 앞에 보이는 곳은 모두 홍성군이다.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난 최영은 고려 말기의 장군이며 정치인이였다. 아산에 있는 맹사성고택의 맹사성은 최영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평생 여색과 재물을 멀리하였던 최영은 1388년 문하시중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회군을 한 이성계에 의해 경기도 고양에 유배되었다가 개경으로 소환된 뒤 죽임을 당하였다. 무속에서는 최영장군을 수명장수와 태평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기봉사안에는 최영장군의 영정이 자리하고 있다. 하얀수법과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최영장군을 그대로 표현한듯한 느낌이다. 예전에 본 김종서 장군과 비슷한 느낌인것 같기도 하다. 이 초상화는 실제 최영장군의 초상이 아닌 무신도의 도상을 원용하여 그린 것이라고 한다. 강렬해보이는 채색과 이목구비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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