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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가 온조왕사당을 세운 이유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7.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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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천안이라 부르지만 위례성은 천안의 역사 지명이다. 지인이 설명하기로는 백제 건국시조 온조묘전이 직산에 유적지로 전해오는 역사 기록을 근거로 온조사당을 재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제향을 하고 있다.

 

천안시에서 일한다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천안의 외지에 위치한 직산에 온조왕사당이 거의 준공되어다는 것이다.

온조하면 한성백제가 생각나는것이 사실인데 한참 내려간 천안 직산에 왠 온조왕사당일까? 궁금해서 그곳을 방문해보았다. 천안시는 총사업비 13억원을 투입하여 418년만에 온조왕사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온조왕사당이 건리되었는데 천안역사에서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특히 건국시조 온조왕에게 고하는 제사인  고유제는 조선시대때에도 행했던 제사라고 한다. 백제의 첫 도읍지는 바로 직산위례성이었다. 고문헌 고지도 어느곳을 살펴봐도 천안에만 위례성이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고려 때에는 '울레골' 위례와 같은 옛 터키어 발음 '위래' 한문 직산으로 표기했다.

 

이곳에 온조사당으로 건립하기 위해서 천안시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및 천안향토사학회와 같이 학술조사 및 합동조사를 3년간에 걸쳐 진행하였다. 그 결과 직산위례성 백제 초도설은 고문헌, 고지도, 성씨 설화에 전승되고 있고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지명 변화등이 문헌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백제초도는 바로 서울 풍납토성에 자리한 한성 백제설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는 위례백제시대가 있었다는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져서 아직은 낯설은 온조사당이다.

지금까지 위례성이라는 지명은 서울 송파구, 위례성 대로등의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천안시 관계자에 따르면 위례성, 사산, 직산같은 지명이 공존하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전승되는 곳은 이곳 천안 직산이라고 한다. 즉 초기에는 이곳에서 초기 도읍을 했지만 이후에 한성으로 이동하여 풍납토성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온조왕사당이 건립된 2015년부터 새롭게 역사가 쓰여지는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듯 하다.

백제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서울'을 울레성>울내성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풍납동의 옛 지명에 '울레'가 쓰였다면 초기 도읍지였던 이곳에도 '울레'와 동일한 지명을 사용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곳 직산의 엣 이름 사산이 위례성으로 소급되는 지명이라면 풍납동도 사산에 소급하는 동시에 위례성으로 다시 소급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 역사 연구회에 의하면 풍탑토성은 제 2차 위례성이며 위례성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본디 뜻은 몽고어 기원의 '국성(수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안시는 이곳에 온조왕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온조 이야기를 하자면 소서노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 인천지역의 소래포구가 소서노가 처음 도착한 곳이라고 해서 불려진 지명처럼 오래된 이야기이다. 소서노는 자신의 전재산을 주몽에게 걸었고 결국 동부여에서 내려와 고구려를 세우게 도와주었다. 전 남편 사이에서 비류를 낳고 주몽사이에서는 온조를 낳았다. 그러나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유리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왔다.

 

수도의 입지에 대한 견해차이부터 시작하여 지지하는 세력의 분열로 인해 비류와 온조는 분열하게 된다.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자 소서노는 장자인 비류를 따라 메주골로 가고 온조는 어떻게 이곳 직산으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시 첫 도읍을 이곳에 정하였다가 한성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여진다.

 

2015년에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백제의 첫 도읍지와 온조왕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천안시는 직산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정립하려 노력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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