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보령여행 1번지 조선3대수영 충청수영성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6.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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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에 전망대도 있지만 바다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에는 충청수영성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는 것이 멋진 풍광을 만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풍광을 볼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바다에서 올라오는 적을 관찰하기에도 좋은 지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되었으며, 그 규모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에 배속된 군선과 병력이 군선(軍船) 142척이나 되었으니 서해안 방어기지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은 충청수영에서 영광과 비극을 같이 가져다 준다. 조선 초기에 실시되었던 진관체제는 외적의 침입에 효과가 없었기에 제승방략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임진왜란때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이 드러났다. 이순신장군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웠던 충청수군은 진주성에서 대부분 죽고 나자 군사가 없는 오천성은 빈채로 방치되다가 1895년에 폐지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만약 중국이 위협적인 존재였다면 이곳이 군사적인 기능없이 빈채로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을 듯 하다. 오천성은 초기에 만들어질때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중종 5년에 이장생이 16년간에 걸쳐 돌로 축성하였다. 이장생의 본관은 가평(加平). 어버지는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할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이다

 

 

 

그냥 석성의 흔적이 조그마하게 남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꽤 있는편이다. 한 지역을 지키는 성이라 부를만 하다.

 

 

육지에서 오는 적도 어느정도는 방어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조선시대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구를 막는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세금을 보호하는 것이었을것 같다. 세곡을 실고 나르던 조운선을 보호했던 중부지방의 해안 방어거점 충청수영성..

 

세금을 거두어 나르던 조운제도의 중심은 조창(조읍포창, 금곡포창, 경창, 공진창, 덕성창, 법성포창, 영산창, 소양강창, 홍원창, 가흥창)으로 강가나 바닷가에 있었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거둔 조세는 군사비와 사신접대비로 사용되기때문에 제외하고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모두 강이나 바다를 통해 운송되었다.

 

 

 

충청수영성에 있었던 오천수영관아는 보령에 있었던 조선시대 충청수영청의 관청 건물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당시에는 객사 82칸, 상서헌 9칸, 내동헌 10칸, 외동헌 10칸, 아사 5칸, 관청고 10칸, 군사 7칸으로 이루어졌었다. 현존 관아 건물로는 장교청, 진휼청, 공해관 3동이 남아 있다.

 

 

 

현존하고 있는 충청수영성의 건물로 가는 안내판이다.

 

 

이곳은 진휼청으로 수영에서 빈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곡식을 꾸어주고 거두어들이던 곳이다. 충청수영성 서문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공산성을 걸어본 기억이 있는데 성벽과 안쪽에는 성안풍경이 바깥쪽에는 공주시내를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바다가 왼쪽에 보여서 그런지 걷는 기분이 더 상쾌하다.

 

 

이곳이 포토존이라고 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저녁노을이 기막힌 모양이다. 아직 낮이 긴 시간이라서 그때까지는 기다리지는 못하고 내려간다.

 

 

충청수영성의 성벽을 따라 쭉 걸어가본다. 저 멀리까지 한눈에 보이는 성벽의 위치는 정말 좋다.

 

오천항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서해의 해군사령부였다는 누각 '영보정' (忠君憂國之意) 복원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영보정은 다산 정약용이 “세상에서 호수, 바위, 정자, 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영보정(永保亭)을 으뜸으로 꼽는다”고 했고, 채팽윤은 “호서의 많은 산과 물들 중 영보정이 가장 뛰어나다”고 했을 만큼 경관이 뛰어나 선비들 극찬을 받았던 누각이라고 한다. 이곳은 작년에 착공하여 올해까지 복원될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 진행이 많이 된것 같지는 않다. 이곳이 복원된다면 1878년 화재로 불탄 뒤 137년 만에 다시 지어지는 것이다.

역시 서해는 뻘이 많은 곳이다. 썰물때라 그런지 바닷물이 적지 않게 빠져나간듯 하다.

 

 

저곳은 오천항으로 보령의 항구중 두번째로 큰 곳이다. 보통 보령항을 많이 찾는데 이곳도 바다를 만끽하고 회를 먹기에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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