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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만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강경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1.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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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젓갈이 많은 지역으로만 알려져 있는 강경은 과거에 무역의 중심이었다. 강경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이었기에 일찌감치 번성하였으며 전북 장수군 수분치 마을에서 발원한 금강은 소백산과 계룡산을 돌고 돌아 백제의 수도 공주, 부여를 지나  강경을 지나쳐갔다.  백제시대에는 덕전군 - 고려시대에는 덕은군 - 조선시대에는 은진현의 김포면 - 1914년에는 강경포로 불리면서 강경이라는 지역명이 자리잡았다.

 

 

지금은 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경은 예전에는 충청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교통 요지이지면서 무역의 중심이었다. 서해와 통하는 금강이 있으며 수산항으로 발전하였던 이곳은 성어기에 하루 백여척의 배가 드나들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원산항과 함께 조선 2대 포구로 불리었지만 1889년 군산항이 개항되고 1931년 장항선이 개통되면서 강경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항구로서의 역할이 끝나게 된 것은 1990년 금강하구둑 완공으로 인해 뱃길이 끊기면서 부터이다.

 

 

저곳에 수많은 배가 드나들었을 것이다.

바다에서 이어진 물길이 강경 내륙까지 이어져서 각종 수산물들의 거래가 활발했는데 1930년에는 대구, 평양과 함께 전국 3대시장으로 꼽혔다. 일제시대에도 이곳은 인기있는 곳이였는데 하루 2~3만명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진다. 1990년 금강하구둑으로 인해 쇠퇴가 빨라지기 시작하자 1990년대 후반에 강경젓갈축제등을 개최하여 다시 지역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강경에 가면 강경노동조합 건물이 있는데 1925년에 신축된 곳으로 강경 흥망성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 내륙지방으로 운송되는 수산물의 대부분이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는데 이때 강경 노동조합이 결성이 된다. 건축당시 한식 목구조의 2층 건물로 지어진 노동조합건물은 현재 1층만 남아 있다.

 

강경에는 노동조합 건물외에도 한일은행 강경지점, 옥녀봉, 죽림서원, 하강경교등 풍요로왔던 역사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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