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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새가 날라와 앉았다는 대조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11.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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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 창건이 시작된 것은 황금빛의 큰 새가 꿈속에서 사라진 곳이 바로 성흥산 방향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음보살이 안착했기 때문일까. 대조사는 오래된 느낌과 무언가의 영험한 기운이 도는 곳이다. 이곳 대조사가 만들어진 것은 백제의 성왕대로 올라갑니다. 임금은 백제의 안녕과 백제백성들의 태평을 비는 큰 절을 지었으니 그 절이 대조사이다.

 

삼국시대를 비롯하여 불교가 가장 번창한 시기는 백제로  26대 성왕(523∼553)때로서 성왕은 웅진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하는 동안 불교의 융성에 크게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는 1,500년된 절 대조사는 사람들의 왕래는 많지는 않은편이다.

저곳의 약수는 천여년을 이어져 내려온 약수로 무언가 영험할 것 같아서 한 대접 마셔본다.

 

 

이곳 대조사는 다른 절처럼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등이 없어서 오래된 절이라고 생각되지가 않았다. 그냥 조그만 암자같은 느낌으로 바로 경내에 이를 수 있다. 대조사 석탑은 원통보전 앞에 있는 탑으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다.

 

 

경내를 돌아다니다가 불상을 보니 민중의 바램을 들어줄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다가 번역함으로써 백제 불교발전에 이마지한 겸익이 창건한 고찰이 대조사다.

 

 

대조사 석탑은 원래 탑신이 엇이 옥개석 3장이 남아 있는데 1975년 부근에서 탑신이 발견되어 보수하였다. 사찰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진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미륵석불을 보는 순간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이 연상되었다. 소나무가 옆에서 우산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이 커다란 미륵불은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바위를 깍아 지금같은 높이 10m의 미륵보살상을 만들었다. 희한하게도 백제시대의 절은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이곳 대조사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밑동만 남아 있는 고목의 모양도 특이하다. 속이 비어있는데 마치 연꽃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땀을 식히면서 대조사에 묻어 있는 세월의 흔적은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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