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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예술가 이응노의 흔적을 보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11.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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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이 있어 이응노라는 미술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적이 있다. 그런데 충남 홍성에 이응노의 생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보았다. 이응노는 남들은 가지 않은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응노화백은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서 사춘기를 그곳에서 보내고 서울을 거쳐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 충남 홍성에는 불굴의 의지로 살았던 인물이 적지 않다. 일제시대의 시인 한용운과 일본군을 위협했던 김좌진 장군 모두 충남 홍성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이능노 역시 일본 가와바다에 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전통적인 동양화나 문자추상, 꼴라쥬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에 프랑스에서 추상화를 배우면서 다양한 미술세계를 그려나갔다. 서예, 조각, 도예, 그림 모든 것을 다루는 이응노 화백은 시대를 투영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곳은 너른 땅에 마련된 이응노 미술관과 복원된 생가가 자리한 곳이다.

이응노는 다른 미술가와 달리 암울한 시대를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간첩과 만났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동백림사건으로 인해 징역을 선고받고 결국 1989년 머나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응노 화백은 개인적, 시대적으로 암울한 인생을 보냈다. 냉전이 치열했던 시대에 한국의 현대사를 그려내기도 했고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했다.

 

 

이응노 미술관을 보면 비정형으로 배치된 모습이 조금 특이하게 느껴졌다. 이곳 건축물은 한정된 예산과 처음 시작할때 이념적인 오해에 의해 중단되기도 하고 담당자가 변경되어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알려져있다. 완성된 건물은 콘크리트와 유리, 목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다섯개의 건물이 조화로와 보였다.

 

 

이응노 화백은 생전에 대나무를 참 좋아했다고 한다. 대쪽같음이 즐거웠던 것인지 대나무를 많이 쳐서 좋은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고암 이응노는 1959년경에 반추상에서 추상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였다고 한다.

고암 이응노, 1904 홍성 -> 1989 파리

 

"나는 그래도 고독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을 뿐.

나는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갖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이곳은 실제로 이응노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작품 중 고향집에 등장하는 집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라 깔끔하게 지어졌다. 아이러니하게 박정희에 의해 진행된 새마을 운동에서 이응노생가가 없어지고 당시 사건으로 인해 복역까지 한 이응노 화백은 박정희정권과는 악연이였던 모양이다.

 

 

 

사람도 없고 마당은 넓으니 이곳에서 시 한편이나 그림 한점을 그려도 좋을것 같은 느낌이다.

 

 

 

 

 

대나무를 그리다라고 말할만큼 살아생전에 대나무를 좋아했다는 이응노의 의견을 반영한 것처럼 울타리를 대나무를 엮어 만들어 놓았다. 이응노 화백의 작품중에 바람 부는 대나무 숲이라고 있다. 대나무 그림인 병풍 앞에서 손을 저어 흔들면 바람소리가 들릴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는 작품이다.

 

저 앞에 보이는 연지공원은 오래된 지도에서 처럼 구불구불 만들어진 길을 따라 연을 구경할 수도 있고 밭두렁을 걸어볼 수도 있다.

 

 

생가 기념관을 보는 것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이곳 생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올해는 이응노 화백이 태어난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기념전 행사는 2015년 3월 8일까지 이어지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방문해봐도 좋을듯 하다. 고전적인 서화에서 추상적인 그림까지 아시아와 유럽의 미술이 어우러진 그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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