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추모하는 곳이 바로 추모각이다. 2015년은 유관순 열사 순국 95주기로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이곳 추모각은 1969년에 건립되었으며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 230로 지정되었다. 십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순국 소녀 유관순 열사는 독립 만세를 외치던 그 다음해 가을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유관순은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의 뜻을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一. 今日 吾人의 此擧는 正義, 人道, 生存, 尊榮을 爲하는 民族的 要求이니, 오즉 自由的 精神을 發揮할 것이오, 決코 排他的 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一,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一, 一切의 行動은 가장 秩序를 尊重하야, 吾人의 主張과 態度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하게 하라.
무언가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추모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찾아와본 것은 처음이다.
태극기가 양쪽으로 걸려 있어서 조용히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걸어가본다.
그래도 이정도 규모의 추모각이 세워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얀 눈이 잔디밭 위로 살포시 내려있어서 투명한 유관순 열사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여러분!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방하고도 온 천지를 활보하며, 우리에게 가진 학대와 모욕을 가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고 살아왔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그녀의 영정이 추모각 안에 이렇게 자리하고 있다. 어딜 가던지 간에 방명록이 있어도 기록해본 적이 없는데 이날만큼은 내 이름 석자를 쓰고 내려온다.
3.1운동을 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녀 역시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남들과 비슷하게 좋은 사람과 만나서 결혼하고 자신의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상징적으로 유관순 열사를 모시며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곳은 2009년에 준공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중 순국한 애국지사의 위패를 모시는 아우내순국자 추모각으로 가는 길이다. 28억원을 들여 2008년 4월 착공, 1년4개월 만에 준공한 이 `순국자 추모각'은 병천면 탑원리 유관순 열사 추모각 주변 1만1천836㎡의 터에 들어서있다.
전통한옥 구조의 추모각(면적 86.58㎡)을 비롯해 출입문, 한식막돌 담(길이 119m), 생태 개울, 연못, 휴게 쉼터, 광장이 갖추어져 있어서 가족이 함께와도 좋을만한 분위기이다.
1919년 천안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 당일 순국한 19명과 옥고 후 순국한 29명 등 48명 가운데 유관순 열사를 제외한 47명의 순국지사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던 인물들이 모셔져 있는 추모각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지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이땅에 살아가는 후손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저 먼곳에서 느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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