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체험단 및 삶이야기/역사다시 읽기

역사의 변화가 일어난 충남 아산 봉곡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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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경기도 광주시 초부면에서 태어났지만 실학의 대가 이익의 사상을 연구하는 시도는 충남 아산 봉곡사에서 시작된다. 정조시대의 인물 정약용이 노론의 공격을 받고 종6품의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었다. 우부승지라는 높은 위치에서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어 충청도 홍주로 내려간 정약용은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다.

 

이때 정약용은 부여의 조룡대도 방문해본다. 조룡대는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침략할때 신령스런 백제의 수호신 용이 나타나 방해했다고 한다. 소정방이 사람을 풀어 연유를 알아보니 의자왕의 아버지였던 무왕이 용으로 환생해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소정방이 북쪽 강물 속에 솟아난 바위에 올라타 철사 낚시줄에 백마의 고기를 끼워 용을 잡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로 소정방이 올라탔던 바위를 조룡대라 명명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침략자였던 소정방이 올라탔던 바위에 이름을 붙여 그때까지 전해진 사실에 정약용은 실망하였다고 한다.

 

 

좌천된 정약용은 오히려 이때 성호를 기리는 강학회를 충남 아산 봉곡사에서 열자고 지인들에게 전한다. 정약용이 머물던 홍산에서 가까운 절은 바로 아산 봉곡사였다. 실학의 대가로 후세에 정약용에 영향을 미친 성호 이익은 형 이잠이 당쟁의 재물로 죽게되자 첨성리로 낙향하여 학문에만 몰두했던 인물이다. 이잠은 숙종에게 장희빈의 아들이자 세자였던 이윤을 보호하고자 주장했다가 형장 열여덟 차례를 맞은 끝에 장살당한다.

 

아산에 위치한 봉곡사는 지근거리에 온양이 있고 광덕산과 천방산으로 둘러쌓인 절이다. 우거진 숲에 골짜기가 깊어서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충청도 지역에서도 적지 않은 활동을 했던 정약용은 농촌사회의 모순과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였다. 정조의 사후에 유배등의 생활의 거치며 현실성있는 학문을 완성하려는 시도를 했다. 행정기구와 법제 및 경제재도를 대폭적으로 개혁하려한 '경세유표', 목민관을 중심으로 한 향촌통치의 운영개선을 목표로한 '목민심서', 백성의 억울함이 없기 위한 덕치의 규범을 명확히 하고자한 '흠흠신서'등 주옥같은 저술을 남겼다. 

 

정약용이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시작은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어 시작한 이익의 강학회였다.

이익의 강학회가 열린 아산의 봉곡사는 그의 정신은 더 맑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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