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전라도지역을 의미하는 호남과 경상도 지역을 의미하는 영남은 적대적이지 않을지라도 정치적으로는 한쪽 색깔을 가진것은 사실이다. 각자 지역마다 개성이 있다. 그 중에서 중심이 되면서도 대의를 위해서 과감히 몸을 던지는 기질을 가진 곳은 바로 충청도 사람들이다. 특히나 충청남도 인물들은 시대의 변곡점마다 항상 키메이커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지 않은 인물의 흔적을 찾아 글을 써왔다. 일제에 맞선 인물만 보더라도 굵직굵직한 인물들은 대부분 충청남도에서 나왔다. 일제에 맞서서 1896년 7월 서재필박사와 함께 독립협회 창립을 주동하여 중앙위원과 부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1908년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엿던 이상재 선생은 충남 서천 사람이며 삼일운동을 이끌며 조선민족을 하나로 모았던 유관순 열사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쓰며 일제 시대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인물 만해 한용운 역시 충남 홍성 사람이다.
우스개 소리로 돈을 벌면 충청도 사람들은 옷을 사입고, 전라도는 음식을 해서 먹으며 경상도는 집을 고친다고 한다. 그다지 넓지 않은 땅에 사는 사람들도 의식주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경상도 사람들은 조선후기의 남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퇴계 이황과 유성룡의 학풍을 잇는 이들은 주리학풍을 믿으며 자신들의 문중을 중요시 한다. 안동 하회마을에 가보면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충청남도에도 적지 않은 고택이 있지만 한국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택중 상당수는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역 사람들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라도는 임진왜란때 피해가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농토를 가지고 있다. 수산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먹을거리가 풍부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그곳은 적지 않은 음식이 발달해왔다. 넓은 평야와 넓은 뻘을 가지고 있는 그곳은 먹을거리는 풍부했을지는 몰라도 고려이후에 벼슬길이 적지 않게 막히면서 정치적으로 소외된것도 사실이다.
충청도에서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그 색깔이 묘하게 다르다.
충청남도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비롯하여 소론의 영수 윤증이 태어난 곳이며 조선조에 고위벼슬을 적지 않게 배출한 본거지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사람들은 말이 느리다고 알려져 있는데 양반은 극단적인 말을 아끼기 위해 한번더 생각하는 가풍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역사의 인물을 만나보았다. 검소한 느낌을 주는 윤황선생의 고택, 영조시대 무관 이삼장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개를 지켰던 생육신 김시습,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윤증고택, 현명했던 정치인 한음 이덕형, 보령의 학자 이산해, 예산의 최익현, 인조반정의 주역 이귀, 명정승이었던 아산의 맹사성, 외암 이간등 이렇게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던 인물이 많은 곳이 충청남도이다.
근세만 보더라도 윤봉길의사, 청산리전투를 이끌었던 김좌진 장군도 충청남도 사람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객관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충청남도 사람들은 항상 국가가 정치적으로 위험한 대립상황이나 외세에 침략을 받을때 항상 앞서서 사람들을 이끌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을 일어나게 했던 기폭제는 바로 갑사에서 일어난 승병장 영규에게 있었다. 최초의 육전승이라는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으로 내려가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영규의 혼은 금산 칠백의총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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