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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리9층석탑, 가슴에 묻고 역사에 답하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8.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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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변에 위치한 서정리9층석탑을 적지 않은시간을 들여서 돌아보았다. 그곳에 피어있는 정산백련이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니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백련만 아니였다면 삭막한 벌판에 서있는 옛날 석탑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신라의 다보탑이나 석가탑이 그렇듯이 3층석탑이 많고 고려시대의 석탑들은 5층이 많은데 이 석탑은 마치 백제의 석탑처럼 9층으로 만들어졌다. 통일은 했지만 백제의 혼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른 아침 아니 새벽에 보는 서정리9층석탑은 장엄해보인다.

 

 

서정리9층석탑을 만나기전에 청양백련을 먼저 만나게 된다. 청양정산 백련지는 400년간 지켜오다 2000년 정산면사무소 보수공사를 하다가 이곳에 백련을 옮겼는데 이식이 불가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다가 토종 작물로 연꽃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서정리9층석탑 주변에 복원했다고 한다.

 

 

지금 보는 것은 청양백련(일명 정산백련)으로 조선 선조 20년에 1587년 송담 송남수 선생이 정산현감으로 재임할때 좌측에 연못을 만들고, 만향정이라는 정자를 세우면서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높지 않은 산들을 뒤에 배경으로 두고 서정리9층석탑은 우뚝 서있는 느낌이다. 하늘에서 해가 나오기전의 새벽풍광을 보여준다. 9층석탑 뒤에 있는 산성은 두량윤성으로 백제의 사비성이 무너지고 난 다음 저곳에서 마지막 항전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마치 지금 비가 쏟아질것 같은 하늘의 풍광과 서정리9층석탑이 잘 어울려보인다. 2층의 기단위에 세워져 있는 서정리9층석탑은 이름대로 9층으로 신라의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여 고려초기에 만들어졌다.

 

 

보물제18호 높이 600cm의 정산리 9층석탑이라는 비석이 놓여져 있다.

 

 

석탑에 다가가서 자세히보면 하층기단의 갑석이 하층기단의 면석과 같은 돌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랗고 청명한 정산의 새벽하늘로 우뚝 솓아 있는 석탑의 모습에서 역사는 빠름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모서리마다 구멍이 나있는데 종교행사등에서 장식등을 걸어놓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자세히 정산리 9층석탑을 살펴보면 디테일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탑의 아래에 세밀하게 새겨져 있는 층을 보면서 그 단단하다는 한국땅의 돌을 조각하는 우리 선조들의 기술력에 박수를 보낸다.

 

현재 한국에 현존하는 9층탑은 오대산 월정사의 팔각구층탑과 정산리 9층석탑뿐이다. 황룡사 9층 목탑도 원나라 침략당시 불타버렸으니 매우 귀중한 보물이다. 신라양식을 따른다고 했지만 백제인들의 석탑과 목탑을 만드는 기술은 삼국을 통틀어 최고였다. 그 기술의 일부를 이어받아 만들었을 뿐 저 석탑은 백제인의 것이라고 하는것이 맞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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