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주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한국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그 흔적이 남겨져 있다. 한국땅에서도 금속화폐가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신용화폐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현대적인 금융 시스템이 확립되고 나서부터 가능해진 것이다.
부여에 가면 부여여자중학교 인근에 부여 쌍북리 280-5번지에서 좌관대식기라는 이름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전인 2008년에 발견되었는데 길이 81cm, 너비 2.3cm, 두께 0.6cm의 목간으로 618년 좌관이라는 관청에서 고순몽 등 10명에게 곡식을 빌려준 기록을 적어놓은 것이다.
고대국가가 자리잡기 시작하면 국가는 공식적인 고리대 이율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국가가 자리잡기 이전까지는 대부분 사적으로 빌려주고 받지만 삼국이 한반도에 정착되고 나서 각종 제도를 통해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했다.
신라의 진대, 진휼이 그렇고 고구려의 진대법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대식제도가 있었다. 좌관대식기 문서목간은 백제의 환곡제도를 기록한 것으로 6월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이자와 함께 상환 받는 내용을 기록한 장부다.
백제가 받은 이자는 5할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법정 최고 이율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당시 경제가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자원의 극심한 결핍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봄철 춘궁기에 엄청난 가격의 곡물을 빌리고 수확기에는 곡물가격이 떨어질 때 상환하는 것이니 어찌보면 합당한 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조금씩 밝혀지는 고대국가 백제의 흔적을 보면 그들은 합리적인 생각을 했다는 자료가 적지 않다. 중원으로 뻗어나가려던 호방한 고구려, 기회가 왔을 때 잡은 후 통일국가를 만든 신라, 각종 시스템과 문화가 발전했던 백제의 합리적인 고리대 정책을 적은 좌관대식기는 부여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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