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사람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한국사가 예전만큼 주목받지 못해서 그런지 그냥 과거의 흔적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에 가면 그 유명한 미륵반가사유상의 복원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백제역사의 깊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목불 미륵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국보1호이다.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깍은 약지를 구부려서 동그랗게 환을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가볍게 세웠다. 밀교의 해석에 따르면 약지는 약사여래의 상징이라고 한다. 고류사 미륵반가사유상은 상반신을 벗은 형태이다. 인도의 앙코르 불교유산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반가사유상의 다수가 반라라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였다.
7세기쯤, 알려지지 않은 장인이 나무결의 흐름을 그대로 활용하여 얼굴의 윤곽뿐이 아니라 눈섭과 입술까지 자연스러운 고운 선을 그려놓았다. 흘러내리는 옷자락에 머리의 보관까지 심플하면서 우아해 보인다. 좌대의 연화문도 세련되어 보인다. 마치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한다. 미륵반가사유상의 고뇌하는 모습의 균형은 완벽해보이기까지 하다.
나무로 만든 반가사유상이 우리나라 토산의 적송으로 밝혀지면서 일본 고유의 것인지 주장하기조차 힘들기까지 하다. 일본의 국보1호라는 이 목불의 출생의 비밀이 있는데 백제에서 가져왔다는 설과 도래인들이 한국의 소나무를 가지고 와서 일본에서 제작한것과 도래인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일본 풍토의 영향을 받아 제작했다는 설이다.
묘하게 닮아 있는 금동 미륵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데 1910년 전후하여 후치가미 손을 거쳐 데라우치 총독에 들어갔다가 해방을 맞았다. 부여박물관에 있는 미륵반가사유상 역시 도굴된 이력이 있다. 반가사유상의 기원은 인도의 단다라 양식에서 비롯이 된다. 미륵반가사유상은 여러곳에서 발견이 되는데 특히 백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백제 활석제반가사유상, 서산 마애삼존불등이 있다.
천여년동안 일본의 도읍지 역할을 했던 교토에 가면 고류사가 있다. 이곳에 가면 미륵보살상이 가장 인기가 많다. 그 미륵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보관미륵이라 불리는 미륵반가사유상이있는 반면에 보관을 쓰지 않는 상투미륵 역시 교토에 있다.
'여행을 떠나요(1000) > 한국여행(충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남과 경기도를 이어주는 아산만방조제 (0) | 2014.08.06 |
---|---|
후삼국통일의 중심지는 충청도 ^^ (0) | 2014.07.16 |
왕흥사지에서 훗날을 기약했던 금동 대향로 (0) | 2014.07.10 |
왕흥사지, 백제마지막을 지킨 아픔의 흔적 (0) | 2014.07.08 |
충남 아산의 성황당 고개이야기 (0) | 201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