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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파평 윤씨 재실을 찾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9.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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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한적한 국도를 돌아다니다보면 파평 윤씨 재실이 나온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121에 있는 문화재자료 제 299호인 이곳의 문중에서 배출한 왕후는 무려 여섯명이나 된다. 장경왕후, 정현왕후, 문정왕후, 정희왕후, 순정효왕후, 폐비 윤씨가 바로 그 인물들이다.

 

이곳이 만들어진 것은 윤순거 선생이 묘소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였는데 덕포공 진의 재실, 성경재 영사당의 관리사 등 모두 4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종종 벼슬 이름에 윤(尹)이라는 글자가 붙었는데 파평 윤씨는 바로 그 다스릴 윤을 성으로 사용하고 있다. 윤씨는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가 아닌 통일신라 이후 생성된 토착 성씨로 알려져 있다.

 

 

 

이 문중은 조선시대에만 592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파평 윤씨의 재실이 논산에 있지만 본관인 파평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파평면이다. 파평윤씨의 시조는 윤신달으로 고려 태조(왕건)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에 올랐다.

 

 

파평윤씨 가문에서 유명한 사람으로는 여진 정벌을 하고 9성을 샇은 윤관이 있으며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로 기억하는 파평윤씨의 흔적은 바로 문정왕후가 권력을 쥐고 있었을때의 대윤과 소윤의 세력다툼이다.

 

 

이들 가문의 힘이 느껴진다. 묘소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건물까지 지을정도의 위세를 지녔던 가문이다. 대윤과 소윤의 세력다툼은 문정왕후의 아들이 명종에 등걱하면서 소윤이 이겼으나 문정왕후 사후에 파평윤씨 판도공파는 몰락하고 만다.

 

 

파평윤씨가 이곳 논산의 노성으로 이거한 이후에 연산의 광산김씨, 회덕의 은진송씨와 함께 지역에서 3대 명문가로 자리잡는다. 호서 지방의 대표적인 사족으로 자리잡은 파평윤씨 그것도 소론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 바로 이곳 논산 노성이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파평윤씨의 묘소들이 나온다.

파평윤씨가 배출한 인물중 가장 걸출한 인물로 문정왕후가 있는데 문정왕후의 태릉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하고 있다.

 

문정왕후의 힘이 얼마나 컸던 것일까?

대부분 왕비의 능호는 사릉(思陵), 순릉(順陵), 온릉(溫陵)등으로 불려지나 문정왕후만은 유일하게  클 태(泰)를 사용하였다.

 

 

 

 

 

파평 윤씨의 재실을 보고 있자니 경기도에서 일어나 충청남도 논산 노성까지 와서 거족으로 커갔을 그들의 위세까지 느껴진다. 고려때부터 조선조까지 수많은 판정승을 배출했으며 6명의 왕후를 배출했으니 파평윤씨 재실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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