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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에서 실패한 장군 신립장군?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3. 4.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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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장군의 결사대가 탄금대에서 대패하여 모두 죽고 투신한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탄금대란 명칭은 우륵이 연주하여 붙은 곳이며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소서행장과 맞서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신립은 경상 전라 충청 삼도 도순변사로서 전체 방어전을 지휘해야 하는 위치에 서있던 인물이다. 지금의 군단세개를 지위하는 군사령관 위치와 유사한데 신립이 지휘한 경군은 각 도의 상번군, 무관, 종실, 내시위 군졸 등으로 구성된 중앙군으로서 일개 방어거점인 문경새재에 투입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도순변사인 신립이 고착방어보다는 야전에서 기동방어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새재는 조방장 변기의 방어구역이었다. 신립이 충청도 병력을 증원받지 못한 것이 충청도관찰사 윤선각(후에 윤국형으로 개명)이 저술한 기재사초에 언급되어 있다. 신립군에 예속될 예정인 전라도군 2천 명이 북상 도중 탄금대 패전 소식을 듣고 돌아간 기록이 난중잡록에 있다고 한다.

 

 

이곳은 정말 마음먹고 가야 들를수 있다는 바로 그지역 충주이다.

충주 탄금대 공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도가 있다.

국궁을 쏘아볼수 있는 장소로

 

배수의 진은 아군이 불리한 입장에 있을때 이기기 위해서 실낱같은 희망에 목숨을 거는 행위이다. 무기도 비슷한 가운데 병력의 열세일경우 죽기살기로 덤벼들여서 적을 격퇴한다는 개념으로 적과 아군이 교전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하지만 신립장군의 배수의 진은 죽음의 한수였다.

 

이곳의 절은 지은지 얼마 안되는곳으로 옛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곳이다. 그냥 이곳에 절하나쯤있어야 될것 같아서 지은 느낌이든다.

 

역시 절이니 대웅전은 당연히 지어져 있다.

 

 

불상이 깔끔한것이 만든지 정말 얼마 안된 느낌이다.

이 석탑은 조금 역사가 되어 보이는데 이곳에 원래 있었던것인지 다른곳에서 가져온것인지는 적혀져 있지는 않다.

 

배수의 진은 일본이 더 잘안다

 

배수의 진으로 중과부적의 적을 이긴 일본장군으로 가쓰이에가 있다. 가쓰이에 VS 죠우테이의 전투로 가쓰이에는 수성의 입장이였고 죠우테이는 공성의 입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병력을 가지고 공격했지만 가쓰이에의 정예군이 잘 막아내고 있는 상태였다.

 

쵸우코지성에서는 전쟁에 필수적인 물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이를 지역주민이 죠우테이에게 알려주고 죠우테이는 당연히 10일을 봉쇄한다음 물이 부족할것이라고 생각하고 항복을 권유하려고 방문했다. 그리고 떠보기 위해 세면을 위한 물을 부탁하자 훨씬 많은 물을 가져다 주고 남은 물은 그냥 뜰에 버리고 성내에서는 말을 물로 씻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죠우테이 군은 장기전 봉쇄로 가기 위한 진형의 변화를 만들었는데 가쓰이에는 자신의 군사들에게 물을 배불리 먹이고 다 떨어져가는 물이 담겨져 있는 독을 깨부순다음 적진으로 돌격하는 배수의 진을 감행하여 적을 물리친다. 배수의 진은 그냥 죽을각오로만 덤벼서 되는것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냥 헛된 죽음만 낳을 뿐이다.

 

 

신립장군을 기리는곳 비석이 사당안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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