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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간판스타격인 신사를 찾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3. 6.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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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간판신사격인 신사는 야사카 신사가 아닐까? 교토거리를 관통해서 걷다보면 이곳 야사카 신사를 만나볼 수 있다. 이곳 야사카 신사는 헤이안 도시건설 150년전세이묘천환 2년에 스사노요노미코토 신령을 모신것으로 시작하여 제를 올리는 신사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서기 877년 교토에서 크게 유행한 재액 질병을 물리쳤다고 전해지고 있는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곳이기도 하다. 저 앞에 보이는 주황색 누각문을 일본의 중요 문화재이다.

 

교토의 기온사라는 사당의 터였던 이곳 아사카신사는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진흥왕 27년 2월 기온사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은 7월에 개최되는 일본 3대 축제의 하나인 기온마쓰리가 야사카 신사의 제례행사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일본의 신사들은 대부분 한국인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한다. 먼옛날 일본으로 넘어갔던 한국인들의 자취라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그 흔적을 지우고 있는듯 하다. 조상이 같아도 서로 죽이고 죽인 고구려, 신라, 백제와도 다를바가 있겠는가?  물론 신라는 흉노의 후예라 같은 조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이곳 교토가 일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은 전국시대에 이곳을 기점으로 통일했기 때문이다. 끝에 마무리한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지만 그 주역은 바로 오다 노부나가가 그 중심에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1534 ~ 1582년 동안 산 인물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10년전에 측근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오다 노부나가는 가문의 중신중에 하야시 히데사다, 하야시 미치토모, 시바타 가쓰이에등은 노부나가의 동생 노부카쓰를 옹립하여 거병하였지만 노부나가에게 패하면서 가문의 중심인물이 된다. 이후에 오다군은 총병력 5천에 불과했지만 요시모토의 군세 3만을 막아내면서 요시모토 가문을 쇠퇴하고 미카와 국의 다이묘 출신 모토야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개명하였다.


 

 

이곳 교토는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의미있는곳이다. 작은 호족세력이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군웅할거하여 일본전국을 재패할 수 있는 근거지로 교토를 선택했다. 조선을 공격할때 사용했던 그 조총은 바로 오다 노부나가가 그 가능성을 알고 먼저 활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걸 그대로 사용했을 뿐이다. 1540년대말 포르투칼 상인들을 통해 들어온 총포를 이용한 철포부대를 조직하여 이를 위한 전술을 개발해냈다.

 

정면사격이 아닌 교차사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히던 전술들을 개발한것이 오다 노부나가의 진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곳 교토로 입성할 기회만 노리던 오다 노부나가는 교토의 무로마치 막부의 균열이 생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성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이시야마 혼간지 세력등과 대결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오다 노부나가의 손을 들어주었던지 상대하기 힘든 다케다 신겐과 오에스기 겐신이 하늘을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난것이다.

 

 

1582년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주코쿠 다카마쓰에 자신의 반 세력을 토벌하라고 보낸 후에 단바의 영주였던 아케치 마쓰히데에 의해 혼노지에서 변을 당하게 된다. 박정희 사후에 신군부가 들어온것처럼 하시바 히데요시는 재빨리 아케치 마쓰히데를 공격한다. 전두환의 신군부의 명분처럼 하시바 히데요시의 승리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당시 조선은 중정반정후 권식의 세력이 강해지고 중종의 세번째 중전이였던 문정왕후에 의해 조선은 그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명종이 자신의 모후인 문정왕후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130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전쟁을 준비중인 일본의 일사분란한 군사력에는 한참이나 못미쳤을것이다. 추후 선조가 즉위했지만 선조역시 중신들을 압도할 정치력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임진왜란의 화는 폭군 연산군에 이은 중종의 정치적인 기반의 약화에 이어 인종과 명종에 이은 문정왕후의 권력욕에 따른 결과이다.

 

 

일본의 힘은 이런것 과거의 흔적 그리고 역사에 의해 나온다. 오다 노부나가는 미래에 대륙을 정벌하고 싶다는 의지는 역사의 흔적 곳곳에서 나온다. 됴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마도 자신이 주군으로 모셨던 오다 노부나가의 그 역량을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

 

 

교토를 거닐다보면 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한 수많은 전국시대의 인물들의 혼이 느껴지는 느낌이다. 국가를 위해서 국민이 일치단결하는것은 보면 미국과 일본이 유사한 느낌이다.

 

필자가 돌아다닌 이곳은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로 진격해갈때 하경으로 속하는곳으로 하경은 시조역 부근 3km를 말하고 상경은 위쪽에 교토부청 주변 3km지역을 말하는데 현재 교토가 내세우고 있는 도시정책 슬로건은 '교토가 언제까지나 교토로 남아있기 위하여 교토부청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이곳 교토 기온마츠리는 고대 한반도 신인 '우두왕'의 '탈을 달래기 위한 제사였다. 신라신 우두왕에 대한 제사를 일본은 천여년이 지난 지금도 '마츠리'란 이름으로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이곳 야사카 신사가 있는 교토는 일본 왕실 문화의 중심 터전으로 백제인인 50대 간무천황이 794년 처음 왕도를 개창한 곳으로 현재도 고대 왕궁인 교토어소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조상의 흔적은 한국에서 제대로 발견하기 힘든데  일본에서 그대로 발견하는 느낌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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