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애드버킷이라는 영화가 준 느낌은 아직까지 지속성이 있을정도로 강하다. 데블스 애드버킷과 유사한 영화는 존 그리샴 원작의 톰크루즈 주연 야망의 함정이라는 영화로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요즘에 로우스쿨 나온 변호사의 대우문제로 시끌법적하지만 ~ 아직까지도 법조계는 밥그릇이 보장되는 고소득 직종에 속한다. 과연 사법고시나 로스쿨 출신들이 정의같은것을 지키려고 법조계에 입문하는것일까? 결국 돈과 어느정도의 명예를 가져다 주기 때문일것이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자신의 소신과는 상관없이 이기고 돈을 벌기 위한 어떤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돈이 모이는곳에 탐욕이 있다.
캐빈은 자신이 살고 있던곳을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한국의 서울이 그렇듯이 뉴욕 역시 미국의 돈이 모이는곳이다. 돈이 모이는곳에 탐욕이 있고 일자리가 있다. 피라미드 밑에 있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기 때문에 돈의 정점 역시 높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것은 나쁜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과연 전관예우가 없어졌을까?
온갖 공직에서 고위직을 지내다가 왜 로펌으로 가고 각종 이권사업이 연결되어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일까? 고위직에 있었던 파워가 다른회사로 가면서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사 혹은 동료였을 사람의 부탁을 좋은것이 좋다고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판검사로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전관예우가 있었는데 그걸 막는 법이 있지만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악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얼마든지 있다.
사람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얼마든지 자신과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다. 과거 중국의 역사만 보더라도 무측천의 시대에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고발하던 혹리 내준신, 바른말을 하는 충신들을 탄압하던 명나라의 환관 왕진, 사람들에게 수많은 여자와 재물을 상납받고 권력을 휘두르던 원나라의 승려 양련진가, 황천의 명을 받아 왕위에 올라갔다고 하며 사람들 죽이기를 즐겨하던 전진의 황제 부생 등 나열하면 끝도 없다. 이사람들 역시 데블스 애드버킷의 악마 존 밀튼이 다른 모습으로 꼬드긴것은 아닐까?
악마를 잉태시키려 했지만
악마가 악마의 자손을 잉태시키기 위해서 캐빈을 무던히도 꼬드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돈을 주고 그다음에는 성공을 준다. 여기에 매력적인 여자를 선물함으로써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욕망의 늪에 빠지게 하려고 한다. 문제가 되는 어머니와 와이프는 천천히 망가트려가면서 악마의 본성을 조금씩 노출시킨다.
법정에 서는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법이라는 아주 매혹적인 도구를 이용해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공격할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옥죄고 기득권자의 권력을 지켜주는 수단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못믿기 때문에 만든것일지 모른다. 법뒤에 서서 명예를 얻고 권력과 돈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대화시킨 데블스 애드버킷의 캐빈스토리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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