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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크라이 마미, 법만이 대신 복수해줄수 있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2. 11. 27.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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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돌구로 말해서 사법체계라는것은 사적으로 행하는 모든 불법적인 활동에 대해 대신 해주겠다라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법체계이다 그러나 공정하지 않다는것이 현실의 문제이다. 최근 유명 사립대에서 발생한 성폭행사건의 가해자가 퍼트린 정보에 대해서 결국 집행유예 판결을 얻어냈다는것을 보면 결국 돈의 역할이 작지 않은것을 알 수 있다. 법은 완벽한 신적인 존재가 만든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것이기 때문에 빈틈과 우회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설사 신이 만들었다고 해도 소크라테스 말에 따르면 그들 역시 빈틈이 존재한다.

 

법을 믿었지만 그 법에 의해 배신(?) 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인가? 영화는 남편과 이혼하고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던 '유림'(유선)은 막 고등학생이 된 하나뿐인 딸 ‘은아’(남보라)가 같은 학교 남학생들로부터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미성년자란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게 되고,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던 ‘은아’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제각기 이유로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

 

세상에는 법이 할 수 있는것과 법이 못하는것이 있다. 불완전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속에서 성범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사기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이유로 복수하고 싶어한다. 영화속에서 가해자들의 부모들은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하고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이런 상황속에 유림은 가해자들을 직접 심판하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누가 정의를 말하는가

 

정의라는것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성범죄 사건과 미약한 처벌, 그리고 파렴치한 범죄자들로 인해 더욱 불안에 떠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더 희박해져가는 느낌이 든다.

 

사법에 대한 믿음이 희박해져갈수록 우리는 법의 힘을 믿지 않고 직접 행동하려고 한다. 2011년 10월 은평구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발생에서도 미성년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등교정지 10일뿐이였다고 한다. 셀제로 성폭행 가해자중에 미성년 비율이 14%라고 하니 적지 않은 비율이다.

 

 

무한경쟁시대의 산물들

 

대한민국의 수장이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교육의 마지막은 인성교육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성이 가장 처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인성이 교육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기사 네이버나 다음을 보더라도 메인을 장식하는것중에 돈에 관련된것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돈을 무시해서는 아니지만 돈이라는 잣대로 모든사람을 줄세우기 하고 좋은 직장과 학벌을 얻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의 한쪽을 채워줄 정직, 공정같은 단어는 점차 그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누가 단죄할수 있을까?

 

돈크라이 마미나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이 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법에 대한 불신에 대해 우려가 된다. 사법이라는것은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게 권한을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대리인일뿐이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유림이 스카프에 칼을 숨긴 채 가해자들을 향해 걸어가던 ‘유림’의 손에서 어느 순간 스카프가 스르르 떨어진다. 여기서의 스카프는 하나뿐인 딸을 잃어버린 뒤 세상에 아무 미련이 없는 ‘유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무서운 사람은 잃어버릴것이 없는 사람이다.

 

 

사적인 복수는 타당한가?

 

그럼 이쯤에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것이 있다. 법이 대신해줄 수 없다면 사적인 복수는 과연 타당한것일까라는 질문이다. 사적인 복수에 대해 법이 용인하지 않지만 국민의 정서가 용인한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법이 있는 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사적인 복수는 금지되어 있다. 사적인 복수가 용인 받고 칭송받을때는 일제 식민지 시대뿐이였던것 같다. 사적 복수를 다룬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사법체계가 공정하지 않은 두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돈크라이마미를 보면 씁쓸하면서도 이 사회가 다시금 공정한 사회로 바뀌었으면하는 작은 바램이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갔으면 적어도 우울한 사건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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