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스릴러)

화차, 한국사회의 괴물은 누가 만드는것일까?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2. 3.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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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바탕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영화의 스토리는 탄탄한 편이다. 그녀가 사라지고 그녀가 보여준 모든 정보는 가짜라는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수의사 문호는 결혼을 코앞에 둔 연인 선영의 갑작스런 실종에 전직 경찰 사촌형 종근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그녀의 모든것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원작 소설은 지금시점에서 20년전으로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시간이나 공간적인 배경은 상당히 다른편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관객들이 동의할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 수많은 한국국민들은 거액의 사채빛에 몰리고 생활비자체도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크면서도 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

 

과연 그럴까? 가난이라는것은 결국 다른사람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는것을 의미한다. 가난은 나라가 구제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데에는 정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기름값의 논쟁에서 주류언론이 보여주는 기득권 옹호 노력은 국민들을 눈을 가리고 있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데에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간접세를 줄이고 직접세를 늘리는것이 가장 큰 효과가 있다.

 

마치 기름에 붙는 세금이 내려가면 고소득자가 이득을 보는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기름값이 올라가든 내려가든간에 고소득자들은 기름을 쓸 이유가 있으면 개의치 않고 차를 몰고 다닌다. 그러나 서민층의 경우 세금이 조금 내려간다고 해서 안가던곳도 가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던것을 자가용으로 출근하겠는가? 통계상의 수치변화를 가지고 국민들을 눈을 가리는데 정부가 뒤에서 조정하고 언론이 앞서는꼴이다.

 

 

나를 구원하려고 했지만 실패하다

 

빚이 보여주는 경제적 고통은 마치 족쇄처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돈의 무서움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빚에 몰린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은편이 아니다. 비극적 결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선영이 할 수 있는것은 살인을 하고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속이는것이다. 누구나 고치에서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고 싶어하지만 고치에서 허물을 벗는것은 한번뿐이다. 다시 고치로 돌아가는것은 신의 영역이다.

 

가해자 선영은 경선이라는 이름이였지만 자신을 속이고 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마치 부나비처럼 파멸을 향해 불속으로 뛰어드는 경선은 결국 용산역에서 투신하면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마감하고 만다. 현대인들은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구원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얼마전 웃음전도사의 자살에서 보듯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사촌형은 왜 돕는거야?

 

영화에서 전직경찰 사촌형으로 등장하는 종근은 문호의 부탁을 받고 경선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근데 문호에게 돈을 받은것도 아니고 그냥 궁금증에서 그런것일까? 일없이 경선의 뒤를 캐고 다니는 모습은 다소 동기부족에 가깝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의 대부분은 종근을 따라다니면서 그려지기 때문에 종근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것도 사실이고 연기력이 되는 종근이 보여주는 연기는 괜찮은편이다.

 

사건의 중심인물인 그녀를 사랑하며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 그녀가 상상했던 행복한 어떤 순간을 함께 경험했던 모든것이 거짓이라면 과연 느낌이 어떨까? 영화에서 김민희가 연기하는 선영이라는 캐릭터는 실제보다 만들어진 캐릭터에 가깝다. 종근이 추적하면서 연결에 연결을 가하면서 어떠한 상상으로 창조되는 피조물에 가깝다.

 

한국사회는 곪아가는 병을 치유할 생각이 없다.

 

철저하게 이기주의에 가깝게 개인들은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내가 겪은 일중에 지인이 사업을 하면서 돈을 빌려달라는 일이 있었는데 어떠한 부분으로 보아도 회생이 불가능한 일에 돈을 빌려달라는것은 결국 같이 망하자는 이야기와 같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돈을 빌려달라는 지인마저 자신의 욕구가 만족되지 않자 인연을 끊는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사채, 신용불량, 대부업, 개인파산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회의 현실은 화차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화차란 지옥으로 끌고가는 불수레로 결국 그녀를 지옥으로 끌고 간듯 하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되고 누군가보다 잘 살아야 행복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병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누구는 영어를 잘하네 누구는 성적이 좋네, 직장, 사는곳을 하나의 잣대처럼 들이대는 사회에서 행복이라는것인 더이상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화차에서 경선은 현실에서 탈피해서 행복을 찾기를 바랬지만 결국 무모한 탈출은 그녀를 화차로 몰아넣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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