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경상)

고려의 혼이 담긴 대장경의 고장 해인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1. 10. 11. 06:30
728x90
반응형

해인사는 한국 국민에게 가장 유명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곳이다. 팔만대장경은 경판 앞뒷면에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데 전부 합하면 5천만자가 된다. 뜻을 헤아리며 읽을 경우 전체를 다보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하니 그 방대한 양에 대단하다는 말뿐이 안나온다.

 

역대 최고의 도장은 해인이라 한다. '바다의 도장'이라는 해인은 용궁에 사는 용왕이 사용하던 도장으로 보물중에 보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 합천의 해인사 역시 해인의 신통력으로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 해인의 뜻은 고요한 바다에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거 한장이면 해인사부터 시작해서 소리길과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까지 프리패스가 된다. 아마 저 축전하나만으로 입장료를 받았다면 많은 원성을 샀을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제작되던 때 고려는 몽고와의 전쟁을 치르던 중이였다. 예전의 IMF위기때 금모으기 운동을 하던것처럼 당시에 백성들의 돈독한 불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아마 대장경을 만든것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그 당시 대장경의 제작 배경은 무신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지만 이 이일을 완성해낸것은 고려인의 전계층의 불심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추정된다. 마치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적 의도에 의해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이를 완성시킨것은 바로 국민들이었던것처럼 말이다.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장경각은 모두 네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장경각은 통풍도 잘되고 일조량도 적당해 당시 제작된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예술작품(?)들이 보이는데 머 딱히 예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 특이한것은 사실이다.

이곳 주변에는 참 물이 많다. 큰돌도 많고 물도 많고 해인사라는곳은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기에 가장 좋은곳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팔만대장경에 욕심이 많았던것 같다.

일본이 최초로 대장경을 요구한것은 고려말의 창왕때였는데 이후로도 조선에는 80여차례나 요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이 조선시대에 인쇄해간 팔만대장경은 현재 일본 교토의 여러사찰과 대학등에 남아 있다.

스님들의 사리가 이곳에 잘 보관되고 있는데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에 참여했던 이들의 일부인 3,600명이 명단을 보면 진사, 아녀자, 사미, 천태산인등의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해인사는 신라때인 802년에 창건된곳이다. 고려시대에 태조가 국찰로 삼긴 했지만 강화에 있던 대장경판이 조선초에 이곳 해인사로 오게된 사연은 무엇일까?

그 당시에 강화도는 왜구의 노략질이 점차로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해인사로 옮기게 되는데 지금 보관되고 있는 장경각은 조선초에 만들어진 건물로 목판 보존을 위해 신축했을것이라고 추정된다.

 

 

 

 

 

 

 

이것이 이제 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 얼음불상이다. 대장경의 제작의 뜻을 세우고 사전 준비를 거쳐 완성하기까지 총 16년이나 걸렸다. 이시기에 16년동안이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의 자연을 거스르는 토목사업은 얼마나 빠른시기에 완성되고 있는가를 보면 이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과거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과연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팔만대장경의 경판의 제작시기는 13세기로 대부분의 세계문명권은 필사에 의존했고 706년 신라가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이다. 나름 그시대에는 하이테크였던것이다.

완벽함을 가지고 있는 대장경은 수록 분량도 엄청나기도 하지만 그 정확도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한다.

 

해인사에 보관되고 있는 팔만대장경 전에 불교국으로서 고려가 많은 대장경판이 있는데 현종때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이 있었다. 그러나 초조대장경판과 의천이 간행한 목판들은 1232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곳은 해인사라는 절보다 팔만대장경의 목판의 인기가 훨씬 높은곳이다. 고려의 역사와 혼이 7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해인사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