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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자' 진실을 위해 모든것을 버리는 남자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1. 7. 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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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50년전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인권을 부르짖었던 링컨 대통령의 피살이다. 닷새전 남부의 리장군이 북부의 그랜트 장군에게 투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팽팽했던 신경줄을 놓고 극장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경호원이 없은 대통령 전용석에 잠입한 존 윌크스 부스라는 유명한 배우에게 암살당한것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당시의 미국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복잡한 이권에 의해 벌어진 전쟁이였다. 당시 미 대륙에 건너간 사람들은 신대륙이라는 미명아래 무언가 기회를 잡으려는 가난한 빈민이 대부분이였다. 게다가 이당시에는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가 부족한데다가 대영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져서 미국내의 통화의 부족현상은 극에 달하고 있는 상태였다. 미국은 국제 금융세력과의 다툼을 계속하던중에 미국본토에서 발생한 가장 큰 전쟁인 남북전쟁을 만나게 된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지금까지 알려지기로 가장 큰 것으로 노예 제도 폐지를 둘러싼 이슈라고 볼 수 있다. 4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미국은 300만명이 전쟁에 참전하고 60만명이 전사했다. 노예 제도는 지금의 최저임금제나 외국인 노동자와 묘하게 닮아 있다. 당시 미국에서의 노예 제도의 숙제는 경제적 이익이 문제가 되었다. 노예제도를 찬성했던 남부에서는  노예를 기반으로 하던 목화산업이였는데 노예제도를 폐지하게 되면 백인과 똑같은 임금을 노예에게 주어야 하고 결국 산업의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것이 불을 보듯 자명했다. 마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것이 자명하듯이 말이다.

 

전쟁에서 이긴 링컨 대통령은 남부 정부가 전쟁중에 막대한 빚을 져왔던 국제은행에게 모든 빚은 무효로 한다고 선언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정책으로 금융자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암살의 배후자를 명확히 밝히지 못한채 뜬금없는 존 윌크스 부스라는 배우에게 암살당한다.

 

 

헌법에서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진보론자도 혹은 보수주의자도 역시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는것은 쉽지 않다. 한쪽에서 볼때 다른쪽은 불의이고 다른쪽에서 볼때 이쪽역시 불의가 될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것을 넘어서는 정의라는 잣대는 있어야 한다. 음모자는 바로 그런 정의를 말하고 있다.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서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던 그당시에 북부가 전쟁에서 이겼지만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했고 그 부산물중에 하나가 링컨 대통령의 암살로 드러났다.

 

링컨 암살범중 유일한 여자 메리 서랏은 암살에 공모했다는 이유로 군사법정에 세워진다. 전시중에는 법은 침묵한다라는 명언속에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북군의 전쟁영웅 프레데릭 에이컨이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법을 어긴사람은 그에 맞게 처벌을 받는것이 마땅하겠지만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이 온당한것인지 아니면 합법적인 테두리안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은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영화는 인권을 말하고 있다. 당시 대의와 여론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한 여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법에서 말하는 인권이라는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그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만나곤 한다. 인권이라던가 무죄여부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메리 서랏은 결국 교수대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내부고발자를 보는 시선들

 

음모자에서 프레데릭 에이컨은 북부군을 위해 뛰었던 전쟁영웅이자 휴머니즘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상원의원의 권유에 마지못해 변론을 맡긴 했으나 타고난 성품으로 인해 진실 혹은 정당하다는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노력한 캐릭터이다. 어떻게 보면 승리한 북쪽의 막강한 지휘권을 쥐고 있는 전쟁부 장관 스탠튼이나 링컨을 사랑했던 국민들 그리고 북군의 장교들까지 모두 하나로 뭉쳐진 사람들이다. 이들속에서 암살을 도모했다고 누명(?)이 씌여진 메리 서랏의 변호는 거의 내부고발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내부고발자는 정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조직내에서는 암적인 존재로 취급이 된다. 정의를 위해 혹은 진실을 위해 나섰지만 조직내에서 온갖 협박이나 따돌림을 이루말할수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불의와 온갖 비리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순간 누구도 참견할 수 없는 성역이 된다. 그들에게는 이득을 위해 선 수많은 사람들의 비리가 정의가 되고 그 비리를 고발하려는 사람은 불의이고 배신자로 취급받는다.

 

영화는 메리 서랏을 변호하는 프레데릭 에이컨을 내부고발자를 보는것 같은 시선으로 보는듯 하다. 정당한 재판따위는 필요없고 무죄에 대한 의심 불합리한 재판과정, 협박, 위증 이런것은 북부와 남부의 하나된 통합을 위해 모든것이 감추어져야만 하는 희생에 불과하다. 한 사람의인권이 소중하지 않다면 링컨 대통령은 흑인들의 해방을 위한 전쟁을 왜 했을까?

 

바람직한 신념이 필요한 세상

 

1800년대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왜 한국에서는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생각이 들까? 거대한 힘에 맞서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일들이 비재한 한국사회에서 정의를 세우는것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신념을 버리지 않는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애인과 친구들까지 모두 외면한다. 이건 대단한 신념이 있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든 현실이다.

 

바람직한 신념이라는것은 정말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수 있으면서 다양한 지식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져야 가능하다. 가장 두려운 사람이 지식도 없고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사람이면서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다. 이런사람이 일을 만들면 문제가 되는 상당히 많은 일들을 벌이는데 수습하는것이 정말 쉽지가 않다.

 

대중들이 좋아하는것

 

미디어나 정치쪽에서는 대중들이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진실과 정의 따위는 가끔 나오는 신파극의 주인공에 불과할뿐 희생양만 바라고 있다. 영화에서는 어머니의 자식사랑이라는 내용도 들어가 있지만 단순하지는 않다.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메리 서랏은 정말 청교도적인 삶을 살아가는듯 하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속에서 정답은 찾기 힘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하려고 하는데 그속에서 왜곡이 발생한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진실을 위해서 모든것을 버려도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지금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는 웰 메이드 영화의 표본이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는 정말 마음에 쏙들정도로 대단하다. 그 캐릭터에 대한 몰입력이 대단하다고 밖에 할수 없다. 게다가 절제된듯한 로빈 라이트의 연기나 전쟁부 장관역의 캐빈 클라인등등..게다가 이런 스토리를 발굴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트랜스포머 3에 밀려 CGV에서 상영관을 확보하지도 못했던 음모자..개인적으로 3D로 보았던 트랜스포머 3보다 음모자의 완성도나 몰입감 그리고 잔상, 스토리까지 압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트랜스포머3도 볼만한 장면이 많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여운은 대단하다.  

 

이런 여운 너무 좋다. 그리고 제임스 맥어보이..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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