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는 광해군시대에 나름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쳤던 군주와 이해득실을 따지는 세력가들사이에 희생되는 백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쇠락해져가는 명나라는 세력이 커져가는 청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선의 원병을 요청하면서 그것이 '재조지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했다. 이 당시에 청나라의 누루하치에게 밀려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던 북관과 조선의 원병을 동원하고 협공하겠다는 나름의 전략을 세운 명나라는 조선을 압박하고 나섰다.
혈투는 당쟁과 외압의 소용돌이 정국을 표현하려고 했으나 아쉬움이 남고 폭풍전야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3사람의 혈투라고 보기에는 처절함의 당위성이나 액션상에서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역사를 되짚어볼 기회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국가과 거래할때 실리가 중요하다.
혈투라는 영화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요즘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의 역사관이 얕다는것을 생각하면 흥행의 가능성은 저 멀리 가있을수 밖에 없는 한계성이 있는 영화이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광해군시대에 정치적인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던 대북파와 소북계가 등장한다. 지금의 10~20대가 대북파와 소북계를 알리가 없다.
이 당시에는 이이첨 등 대북파의 대부분은 원병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승종, 윤휘, 임연등 소북계의 일부와 광해군을 위시한 측근들은 원병을 반대했다.
혈투에서 이들이 배치된것은 바로 강홍립이 도원수로 임명되어서 나간 원군의 일행이다. 1619년 2월 광해군은 군대를 만주로 보내는데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포함하여 1만명정도가 되었다. 도원수 강홍립은 어전통사 출신으로 중국어에도 유능하였고 명군과 후금군 사이에서도 적절한 외교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강홍립은 조선군 1만명으로 출병하였으나 무리한 명군의 전략덕분에 패하게 되고 수천명을 살리기 위해서 후금에 항복하게 되는데 일부 살아남은 조선군들은 혈투에서 살아남은 두 남자 헌명, 도영과 전장을 도망친 천민 출신의 두수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다.
강홍립은 역사적으로 해석이 분분하나 항복하고 청나라의 장군으로 조선을 다시 찾아와서 좋은 결과를 만들려고 한 실리적인 인물이라고 보여진다.
전쟁은 세력가들의 힘겨루기
처칠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전쟁을 끝내기보다 전쟁을 일으키기가 더 힘들다. 이 말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수많은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것이다. 명청교체의 길목에서 1619년 2월 1일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넜는데 조선군의 전투부대는 좌영, 우영, 중영의 3영으로 구성되었고 광해군의 정예 5,000명의 조총수들도 같이 참가했다.
'심하 전투'를 포함하여 조선과 명의 연합군과 후금군이 벌였던 전투 자체를 보통 '살리호 전투'라고 부른다. 쇠락해져가는 명과 기세가 살아나는 청나라가 확실하게 정권교체가 되던 시기라고 역사학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치와 권력에 대한 욕망, 우정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 얽히는 상황들을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세 인물 군상과 그들을 둘러싼 역사의 소용돌이’가 혈투에서 그려지는데 긴장감은 그다지 많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자식들의 군대면제율은 상당하다. 평등한 사회의 헌법에 의무라고 되어 있는 군역의 의무조차 면제되는데 과거 조선시대의 정치인들이 군역을 하는 일은 거의 있을수 없고 있어도 무관을 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양반이 하는 일이었다. 이때 조선군을 좌지우지 했던것은 무관이 아닌 문관들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인것이다.
역모사건은 조선의 왕권다지기
광해군시대에는 당파 사이의 대립이 있었는데 대북파와 나머지 정파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것이 특징이다. 국왕의 도장을 위조한 협의로 체포했던 김제세란 인물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역모가 불거졌는데 김제세에 따르면 김직재와 그의 아들 김백함이었다. 그러나 김직재라는 인물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간 인물로 김직재가 말하는 모든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이때 조정 신료들은 줄줄이 연루되었는데 정경세, 장유,서성, 홍서봉등 많은이들이 죽거나 유배되었다. 이 사건을 광해군 일기에서는 한직에 있던 봉산군수 신율이 한건을 올려 승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것이라고 적고 있다.
영화는 나름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 시나리오를 썼겠지만 깊이는 부족해 보인다. 봉산군수 신율은 영화속에서 헌명이라고 보여지고 김직재는 도영의 아버지 김백함이 도영이라고 추정이 된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도영의 아버지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거의 미미했다고 보여진다.
광해군은 자신을 지지했던 대북파뿐만 아니라 서인과 북인을 아우르는 정권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을 조율하면서 안정적인 권력을 창출하려던 광해군의 의도는 결국 실패하고 자신을 왕권에서 내리는 최악의 결과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김직재의 역모사건은 광해군의 측근이었던 소북파를 몰아내고 이이첨 등 대북파의 정치적인 위상이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당시에 이이첨은 권력을 휘어잡기에 가장 간단한 방법인 공안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실제로 박정희나 전두환등이 계엄령이라는 것을 통해 권력을 잡은것과 유사하다. 이 당시에 광해군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각종 역모사건과 옥사 그리고 폐모논의를 주도하면서 이이첨의 권력을 비대해졌고 사림들이 혐오하던 권간이 되어갔다.
혈투에서 이이첨의 역할은 아마도 전국환이 맡은 당수의 역할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결국 다른 당파를 모두 내 쫓은 대북파는 광해군을 유교정치 체제의 공적으로 만들게 한다. 실제 이당시에 대북파는 소수 정파에 불과했지만 권력은 비대했다. 다수에 의한 권력의 과점도 문제이지만 소수에 의한 과점의 폐해 또한 엄청나다. 권불십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희생되는것은 백성들
영화속에서 가족을 잘 보살피고 민초로서 살려고 하던 두수나 역적의 자식으로 세상을 초월한듯한 도영, 가진것보다 더 큰 야심을 가진 헌명은 모두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되는 백성들이다. 영화속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나 이방이 등장한다. 우리는 사또가 부르면 예이~ 이정도로 하는 그냥 보잘것 없는 존재정도로 생각하지만 지방사회에서 이들이 가진 권력은 지금 지방 농협등이 가진 권력과 유사했다.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으로 이루어진 육방은 임진왜란 이후에 향청(지방 양반들의 조직)대신에 우세한 힘을 발휘하면서 백성들을 착취하는 실세아닌 실세였다. 보통 군역등은 병방이 관리할것으로 보이나 다른 향리가 가세하면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는데 특히 호방이나 이방의 작폐가 심했는데 과도한 욕심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상위에 위치해 있는 이들의 온갖 비리덕분에 이들의 급료를 주지 못했고 이는 결국 백성들의 착취로 이어진것이다.
3.22 부동산 대책에서 보듯이 취득세의 감세는 결국 중앙정부의 보전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한것으로 지자체의 취약한 재정은 각 지자체의 급여나 행정등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과거 조선에서 본 육방제도에서의 재정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든다.
혈투는 많은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영화이다. 정치와 권력에 대한 욕구 그리고 애매한 사랑, 가족에 대한 애정등이 얽히고 설켜있다. 남성적이고 리얼한 액션을 통해 이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했으나 2%쯤 부족한 캐릭터의 몰입도와 정치적인 배경의 깊이감 부족으로 아쉬운 영화가 되어버렸다.
'영화를 보다(1000) > 영화평(액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나' 사춘기 소녀가 제이슨 본을 연기하다 (0) | 2011.04.15 |
---|---|
'써커펀치' 소녀들의 강렬한 욕망을 스크린에 풀다 (0) | 2011.04.12 |
'컨트롤러' 당신의 삶을 조종하는자가 있다. (0) | 2011.03.02 |
'쓰리데이즈' 아내를 사랑하면 이럴수 있을까? (0) | 2011.02.22 |
'평양성' 어설픈 배수진을 친 이준익의 덜익은 영화 (0) | 201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