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스릴러)

'돌이킬수 없는' 당신은 보고싶은것만 보고 듣고싶은것만 듣는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1. 2. 11. 09:00
728x90
반응형

돌이킬수 없는 영화는 잔잔하면서 묵직한 파동을 준 영화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이기도 하면서 우리사회가 아동성범죄에 대한 문제에 얼마나 히스테리하게 반응하는지 알수 있게 한다. 영화는 대중에 의한 횡포와 함께 낙인이 찍혀버린 사람의 재기불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중립자의 역할을 하면서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공권력의 상징 경찰조차 대중의 편에 서버린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여진다.

 

전과자라는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 암적인 존재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사회 혹은 미디어, 언론에 의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에 대한 판단기준을 맡겨버리고 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고 착각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싫어하는것은 나도 싫어한다고 믿어 버린다.

 

전과자는 죄값을 받은 사람들이다.

 

전과자라는것은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사회가 세워놓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형을 살고 나온 사람을 말한다. 즉 국가가 만들어지고 사회공동체가 형성되면서 헌법과 각종 법을 제도화시키면서 이정도의 잘못을 한 사람들은 이정도의 벌을 주자라는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과자는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서 할수 있는것에 제한을 받게 된다. 물론 전과자는 선하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것이라는 전제가 성립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을 오히려 재활의 기회를 앗아가버리는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모든이들에게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아동 성범죄자는 사형시켰으면 좋겠다.

사기범에게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은 사기범을 사형시켰으면 좋겠다.

나의 소중한 사람을 해친 사람은 사형시켰으면 좋겠다.

주가조작을 통해 내 전재산을 빼앗아간 금융범죄범은 사형시켰으면 좋겠다..등등

 

법이라는것의 맹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을 판단하는 판사도 사람이고 이들을 기소하는 검사도 또한 사람이다. 예전에 그랜저 검사, 떡검도 있었지만 국민들은 자생적인 정화기능에 의해서 공정하게 되리라고 믿고 살아간다.

 

법이 각자 처한 모든 사람들 기준에서 판단한다면 결국 이 사회의 시스템자체는 의미가 없다.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이 모두 나서서 이들의 양형을 판단한다면 무법천지의 사회가 되는것은 명약관화하며 결국에는 지금보다도 정의가 무엇인지 누가 불법을 했는지 진실은 무언인지 더 알지 못하는 혼돈의 세상으로 변해가게 된다.

 

아동성범죄 전과자는 반드시 재범을 하고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이며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는것은 미디어가 만들고 대중을 선동하여 TV, 라디오등에서 마치 진실인것처럼 알려진 내용에 불과하다. 80%가 넘는 대학진학율을 자랑하는 한국의 지적수준으로 볼때 너무나 뻔하게 선동되어지는것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물론 사기, 도박, 마약등의 재범율이 높은 범죄도 있지만 유독 아동성범죄에 대해 사회가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것은 사회적인 이슈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론이 먹이감을 찾는데 있어서 아동성범죄만큼 이목을 집중시키기 쉬운 이슈도 드물다. 이번에 소말리아 해적에서 구출해온 삼호주얼리호같은 언론이 좋아하고 선동하기 좋아하는 이슈는 몇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호재이지만 아동성범죄는 어떠한 이슈에 의해서 발굴하면 얼마든지 발굴할 수 있는 사회에 숨어있는 호재(?)중 하나다.

 

평범한 유괴영화?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아이가 사라진것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안타까움, 분노를 간접경험해본 사람들은 정말 많을것이다. 돌이킬수 없는이라는 영화는 평범해보이는 일반 유괴영화를 표방하면서 시작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7살 여자아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랑스러운 딸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충식은 생업도 포기한 채,
딸을 찾는 일에만 매달린다 머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스토리와 동일하다.

 

영화에서 주요 포인트는 어린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 얼마전 이사온 아동성범죄 전과자 세진, 마녀사냥을 하려는 대중들의 분노가 결합된것이 이 영화의 특징인데 결국 불안한 대중들이 안정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막다른 길로 몰아 세우고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기록도, 목격자도, 심증도, 눈 앞의 그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고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다!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부성애 혹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그린 영화는 수없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대부분 스릴러로 그려졌고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대리만족 혹은 대신해서 그 상황의 분노를 표출하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전과자가 없을꺼야 아니면 전과자가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있을 수 있는 상황도 있고 있을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얼마나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강도, 강간, 살인등의 중범죄만 아니면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을 위장전입, 내부의 부조리는 눈감아주는 끼리끼리문화, 국민의 세금은 공돈이라는 상식(?) 등등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만의 기준의 범죄는 공동사회에서 만들어진 법에 의한 기준보다 훨씬 가혹하게 대하려고 한다.

 

우린 인문학을 잃어버렸다.

 

어느새 한국은 영어와 수학외에는 모든 학문의 가치는 그 중요성을 잃어버린지 오래이다. 인문학에서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 가지고 있는 의미따위는 출세 그리고 1등지향주의에 의해 모두 퇴색되어버렸다. 즉 사고라는것을 하는것이 아니라 언론이 혹은 정부가 정해주는 한방향을 바라보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돌이킬수 없는 결정을 하기전에 조금만 더 다른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보고 싶은것만 보는것이 아니라 사물 과 정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듣고 싶은것만 듣는것이 아니라 열린귀를 가진 사람이 된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올것이다.

 

문학은 입시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고루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일생을 모두 살아볼수 없기에 간접경험하기 가장 좋은 학문이다.

 

역사는 모든것에 연관성이 있고 과거의 역사는 미래를 반영하듯이 모든 사람에게 혜안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공공의 과거기록이다.

 

철학은 모두가 잘못된 한방향을 바라보고 있을때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담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는 비록 영화의 습작이라고 볼 정도로 조금은 허술한편이지만 영화가 바라보는 방향은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사회가 잃어가고 잊어가는것은 인문학이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