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스릴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쓰레기같은 진실에 다가서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0. 9. 1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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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서영희에 의한 서영희를 위한 영화라고 보여진다. 스토리는 단순한듯 하지만 불편하고 쓰레기같은 진실을 담고 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올리는 영화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선과 악이 등장하게 되는데 비등하게 대결이 가능한 두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써 결말을 예측하기가 힘들게 만들어야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기 때문인데 이 영화는 가련한 복남이라는 캐릭터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잔혹한 핏빛복수인데 너무 불친절한 친구 해원을 보면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복남은 눈부시게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낫 한 자루를 집어 든다. 그리고 시리도록 아프고,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가 시작된다! 마을사람들에게 외면과 냉대를 받고 남편에게는 폭력을 그리고 시동생에게는 성폭력을 받고 살아가는 복남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이 사회는 법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두고 사형제도를 두고 있어서 공식적인 신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남편에게 매를 맞고,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육욕에 집착이 강한 시동생에게 성적인 학대까지 받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섬사람 모두 복남이 처한 상황을 외면할 뿐이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은 과연 무엇인가? 남편에게는 적용할 수 있는 법은 있지만 고립된 섬에서는 요원할뿐이고 시동생은 명확히 적용할 수 있는 법이 있지만 처리할방법이 없다.

 

몇있는 섬사람이래봤자 방관자일뿐 법으로 이들에게 잣대를 들이댈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수를 해야 할것인가? 아니면 이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것인가? 영화에서 복남이 처한 상황을 그 탈출을 할 수 없는 막다른길로 몰아가고 있다. 막다른길에서 사람이 할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신을 파괴하던지 그 폭력성으로 다른사람을 파괴하던지 둘중에 하나로 귀결이 된다.

 

흔히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시골사람들은 다 순박하고 착할까? 세상과 고립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무도같은곳에 사는 사람들은 착할것이다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모두 방관자이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한 현대인에게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지며 잔혹한 장면을 연출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 자신부터 살펴보면 나에게 이득이 없거나 해가 가지 않는 이상 다른사람들에게 너무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해를 끼치기까지 한다.

 

영화에서 방관자는 아홉명 밖에 안 되는 섬주민들의 절반을 차지하는 만종의 친인척들이 그분들이다. 가부장적인 사고가 만연한 무도지만 실질적인 실세이기도 하다. 동호할매, 파주할매, 순이할매, 개똥할매 등 일명 무도할매들은 영화의 스산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데 일조를 했다.

 

누군가는 혹은 길을 찾고 있는 많은이들은 어디선가 있을지도 모르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복남이가 영화속에서 쓴 편지처럼 마음속으로 혹은 말로 혹은 메세지로 끊임없이 자신을 구원해주기 바라지만 어떤이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때 이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하고 결국 사회의 어두운면이 드러나는것은 폭력성을 띤 결과뿐이다.

 

랑하는 해원아

정말 보고 싶다
편지 써도 답장도 없고
내편지가 제대로 가고는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도 많이 바쁘지?
아무리 바빠도 한번은 와라
꼭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
들어 줄 사람이 너밖에 없어
꼭 와야 돼. 꼭!

복남이가

 우리는 약자에게 가혹하다.

 

영화를 보면 폭력적인 가부장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남편을 등장시키고 주변인들도 이에 동의하는데..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은 아마 가부장적인 마인드가 아직까지도 잔재하는것이 문제다라고 문제제기를 할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더 들어가보면 약자에 대한 사회의 가혹함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가 아니더라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왕따나 빵셔틀같은것이 등장하는것은 결국 누군가를 약자로 만들어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는 동물적인 근성에 남아있다고 보여진다.

 

아프리카 초원같은곳에서 보면 사자에게 공격당하는 얼룩말이나 누우를 보면 한마리가 잡힘과 동시에 이들은 다시 평온을 유지한다. 누군가의 새끼이고 어미이고 아비일수도 있지만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동물적인 본능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복남은 희생당하는 한마리의 누우라고 보여진다.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써 다른 마을주민들은 편한 생활을 즐기면 된다는 식의 마인드이지 가부장적인 사회가 문제인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도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직 강자에게만 줄을 서는 사회의 세태는 대한민국에서 약자의 위치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잔인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는 실제로 보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통쾌함까지 느끼게 해준다.

 

많이 불편한 진실

 

해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 ‘김복남’을 둘러싼 불편하고 섬뜩한 진실들과 맞닥뜨리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진실들을 외면하며 복남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복남의 절박한 도움의 손길도 외면한 채 냉소적인 태도의 관찰자로 그저 방관할 뿐이다.

 

인간이 보여줄수 있는 폭력의 극단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머리속에 제대로 각인시키는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주민들처럼 자신에게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악마성과 이런 사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폭력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실제로 있는 아름다운 섬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는데 자연은 아름답지만 인간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걸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악마를 보았다처럼 정신을 난도질할 영화는 아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살아온 방식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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