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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벗어난달처럼' 꿈을 꾸는자 인생의 길을 잃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0. 6. 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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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세상을 꿈꾸었던 인물 이몽학의 난을 그린 영화이다. 조선선조때 일어난 이몽학은 어떤 인물일까? 의병 중에는 관군을 기피한 피역자들이 많았기에 기근과 질병이 닥치자 군도(群盜)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중 대표적 경우가 호서지방의 의병 모집과정에서 하급장교들이 농민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봉기를 꾀한 이몽학의 난이었다.

 

이몽학은 전주 이씨의 서얼로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전라 지방을 전전하다가 임진왜란중에 호서지방의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과 함께 의병모집을 구실로 홍산(鴻山:지금의 부여) 무량사(無量寺)에서 동갑계회(同甲契會)를 조직해서 군사조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결국 내부의 분란으로 인해 이몽학은 살해되고 결국 난은 실패로 끝난다.

 

권력자는 권력뒤에 숨고 광대는 탈뒤에 숨고 칼잡이는 칼뒤에 숨는다!!

 

사람들은 모두다 자신을 보호해줄 막강한 조직을 바란다. 혼자 되기를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모이는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혼자서 무엇을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뿐 모두들 단체를 좋아하는 동물적인 본성이 숨겨져 있다.

 

권력자는 국가가 만들어준 국가 시스템의 비호속에 숨어 있으려고 하고 연예인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가면뒤에 숨어 있으려고 하고 공권력을 행하는 사람들은 공권력뒤에 숨어 있으려고 한다.

 

권력자가 권력 앞으로 나올때 연기자가 진실한 모습을 보여줄때 부당한 공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 나올때 이 사회는 변혁과 사회가 변화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가려주었던 힘 앞에 나올때 나약해진 자신과 세상만사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던가 생각하게 되고 결국 사회를 바꾸지 못하면 자신이 그 힘이 눌리게 된다.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으며 세상을 떠난 최진실이 그랬고 삼성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보여주었던 좋은 사례이다.

 

영화속에서 칼잡이지만 칼뒤에 숨어 살려고 하지 않았던 인물 이몽학은 작품 속에서 정여립의 뒤를 이어 대동계의 수장으로 올랐으나 실제 역사 속에서는 정여립과 함께 반란을 준비하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8년여에 걸친 정여립의 난 및 기축옥사,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 등 세 가지 역사적 사실을 압축을 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라고 보는것이 정확할듯 하다. 프롤로그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은 평등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대동계를 조직한 혁명적인 사상가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동인과 서인이 당쟁을 일삼고 결국 임진왜란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꿈을 꾸는자 힘을 얻는다

 

피폐한 가운데 이몽학은 자신만의 확실한 꿈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모습을 백성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야욕을 펼치려는 사람으로 그려서 매우 안타까웠다.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 분)도 있었지만 이몽학의 꿈에 동조를 하고 그의 꿈을 따른다. 

 

꿈은 모두들 어릴때의 흔적처럼 생각하고 잊혀져 같다. 어릴때의 꿈이 뭐냐고 물으면 참 다양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었을것이다. 이 꿈은 시간이 갈수록 현실화되고 이룰수 있는 기간이 짦은것을 선호하고 결국 바로 앞만 바라보고 사는것이 지금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나 꿈은 진화하고 항상 우리 주변에서 멤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꿈은 꿀 수 있는자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먼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힘을 가져다 주고 누구도 가지지 못한 인생의 설계도를 보여준다. 꿈 그것은 공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속에서 희망의 씨앗이다.

 나의 길을 가련다.

 

영화는 두명의 반대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강렬함을 보여주었지만 정적인 느낌도 함께 만들어냈었다. 

 

황정학의 무술은 맹인이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본능적인 감각을 갈고 닦았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생존’을 위한 무술이며 이몽학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정제된 검술로 설정되었다.

 

나의 길을 가는것만큼 세상에 힘든일도 없을것이다. 누구는 귀가 얇아서 누구는 사는것이 힘들어서 또 다른이들에게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내가 나의 길을 가는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사회가 설득하고 자신이 설득하고 가족이 설득하는것인지도 모른다. 맹인 황정학처럼 혁명가 이몽학처럼 나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은 점점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되어가는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을 침략당했던 유약하면서 권력욕이 강했던 선조와 당파 싸움만 일삼았던 조정대신들은 과연 필요한 사람들이었을까? 적어도 영화에서 이몽학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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